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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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생활하면서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 먼 땅 미국까지 와서 서러운 타지 생활을 견디고 있는 걸까?” “부모님이 희생 하시면서 열심히 모은 돈을 이렇게까지 투자하면서까지 내가 미국에 있을 이유가 있을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내가 정말 뜻 깊은 결실을 맺고 부모님 앞에서 떳떳하게 모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가끔씩 저녁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지친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의문들이 수 없이 떠오르곤 한다. 난 아직도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정확한 답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시절 부터 소심한 성격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 했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작아지곤 하지만, 처음 미국에 와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생긴 ‘이 일’ 덕에 나에 대해 많이 알아가고, 자신감이 생겼었다.

중학생, 8 학년 때 처음 미국에 온 후 나는 많이 내성적이었지만 나름 즐거운 학교 생활을 했다. 다니던 학교에는 주로 백인학생들 뿐이라서 원래부터 소심하던 성격에 영어 울렁증까지 더해져 친구를 사귀는데에만 몇 달이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친구들이 친절하게 대해준 덕분에 아쉽지만 학기 말 즈음에는 잘 어울리게 되었다.

아쉬웠던 6개월 간의 중학교 생활을 마치고 USC 학교로 진학하게 된 친언니를 따라 LA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가까스로 적응한 중학교에서 졸업한 후, 갑자기 LA로 가서 새로운 학교에 적응을 다시해야했던 상황이 나는 정말 싫었다.

언니가 인터넷으로 직접 찾아서 날 등록시킨 고등학교는 거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가톨릭 여자고등학교 였다. 기숙사 학교여서 나는 아는 사람 하나없는 기숙사에 들어가 살아야만 했다.

아직도 언니가 차로 구불구불 산길을 한참을 타고 올라가 나를 내려주고 가버릴 때의 서러움, 외로움, 두려움, 그리고 착잡함을 잊을 수 없다.

고등학교 개학 첫날, 난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배탈이 나서 첫 수업에 늦어버리고 말았다. 같은 기숙사 빌딩에는 나 말고도 또래의 한국 친구들이 많았지만, 새로운 학교가 마냥 싫기만 했었던 나는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그 누구와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주로 뾰루퉁한 표정으로 조용히 있었다. 룸메이트들과도 필요한 말 빼고는 거의 말을 섞지 않았고, 학교 생활도 왕따처럼 혼자 다니기를 자처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런 내 자신의 꽉 막히고 부정적인 태도가 정말 싫증이 났다. 그 날 학교에서 방송으로 Speech&Debate Team 멤버를 뽑는다는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정말 충동적으로 지원을 하러 갔다.

아직도 그 때 무슨 자신감으로 지원하러 간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난 정말 소심했고, 영어울렁증도 심했으며, 더구나 백인들 앞에서서 버벅거리면서 영어로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너무나 창피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은 정말 내게 이상한 날이었다.

초 창기에 멤버가 주로 백인들 밖에 없었던 팀에는 내가 최초로 들어간 유학생 중 한명이 되었다. 처음 내가 스피치 대회에 출전했을 때 나는 Tedtalk에서 찾은 탈북자 이연서씨의 연설을 들고 나갔다. 역시나 내 영어발음은 엉성했고, 사람들 앞에 서자 머리가 새하얘지면서 연설하던 중 여러부분들을 통째로 까먹어버렸다.

너무 긴장한 탓에 말을 너무 빨리해서 연설이 너무 빨리 끝나기도 했고, 내 지루한 연설에 잠들어버린 관객들도 자주 목격했다. 순간 창피했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반대로 하기 싫은 것을 하면서 내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것에 아마도 나는 재미가 들었었나보다. 그렇게 오기부리며 대회라는 대회는 거의 다 참가했다. 결과적으로 어느날 꿈도 못 꾸었던 2등이라는 상이 주어졌다.

마침 겨울방학이라 부모님이 미국에 잠시 와계셨는데, 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하시던 그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에도 상을 줄줄히 탔으면 매우 좋았겠지만 다시 바닥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버텨내야했다. 대회는 주로 아침에 시작해서 새벽같이 일어나서 준비하고 가서 기약없는 대기시간을 견뎌야 했다. 학업과 더불어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지만, 난 다시 그 때로 돌아가라해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4년을 그 팀에서 버틴결과 난 한번더 수상했고, 팀의 공동캡틴으로 선정되었다. 학교에서는 최초로 스피치대회에서 상을 탄 유학생으로 알려졌고, 지역신문에도 실리게 되었다.

이런 기적적인 일들을 모두 겪은 후에도 나는 아직도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내가 뛰어나지 않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은 해볼 수 있다. 그렇게 만리장성처럼 높은 벽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자꾸 깡총깡총 뛰어보다 보면, 가끔씩 그렇게 기적적인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또 되새긴다. 아직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