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옆에 자고 있는 고양이는 사실 당신보다 위대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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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 둔 나의 고기를 훔쳐 배를 채우고
천연스레 이불 속에 들어와 잠을 자누나
쥐들이 날뛰는 게 누구의 책임이냐
밤낮임에도 불구하고 마구 다니네
고려의 문인 이규보(1168~1241)가 지은 ‘고양이를 나무라다(責猫)’

민속화

쫑긋한 귀와 동그란 눈 그리고 앙증맞은 입을 가진 고양이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때때로 말썽을 피우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이불 속으로 들어와 잠을 청하는 모습이 얄밉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운 고양이들! 고양이는 대체로 10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과거에는 ‘괴양이’ 혹은 ‘괭이’라고 불리었다. “개는 인간이 길들였지만, 고양이는 사람을 길들였다.”라는 어느 인류학자의 말처럼, 고양이의 귀여운 외모와 도도한 몸짓에 인간은 마음을 빼앗기고 고양이의 온갖 수발을 다 들곤 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흔히 ‘고양이 집사’라고 칭한다. 그런데 조선 시대 왕 가운데서도 고양이 집사를 자청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과연 누가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고양이 집사의 노릇을 하게 되었을까?

조선 19대 왕 숙종은 어느 날 궁궐을 산책하다 굶어 죽어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숙종은 가엾은 마음에 그 고양이를 데려와 키우게 되고 금색 털이 난 ‘치즈태비’ 고양이에게 ‘금덕’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하지만, 금덕은 새끼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이 별로 떠나게 되었고, 숙종은 장례식을 치러주며 금덕이의 새끼에게 ‘금손’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기록에 따르면 숙종은 금덕이라는 고양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매사묘(埋死猫·죽은 고양이를 묻는다)라는 제목의 시를 남겼다. ‘고양이가 비록 사람에게 도움은 없으나 짐승일지라도 주인을 따를 줄 안다’라고 서술했다고 한다. 숙종은 금덕의 새끼인 금손이를 매우 아꼈는데, 식사할 때에는 금손이를 옆에 앉혀두고 직접 먹이를 먹였고, 나랏일을 볼 때도 늘 곁에 두고 쓰다듬을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숙종과 한 이불에서 잤다는 설도 내려온다. 숙종의 금손이 사랑은 김시민의 <동포 집>에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금묘만 가까이서 선왕 모시고 밥 먹었네. 차가운 밤에는 몸을 말고 용상 곁에서 잠들었네. 비빈들도 감히 고양이를 길들이지 못하는데…임금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며 고양이만 사랑하셨다.” 하지만, 이렇게 각별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별을 피해갈 수는 없었는데 1720년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금손이는 먹이를 먹지 않고 궁궐에서 하염없이 울다가 끝끝내 숙종을 따라 명을 다했다고 한다.  금손이의 시신은 비단에 싸여 숙종의 무덤인 명을 곁에 잠들었다. 금손이의 슬픔 또한 잘 기록되어 있는데 “고양이가 궁궐 분위기가 이전과는 다른 것 알고 문에 들어서자마자 슬퍼하며 위축됐네. 밥에 이미 마음 없거늘 고기인들 먹으랴. 금묘가 달려가 빈전을 향해 우러르며 통곡했네. 통곡 소리 너무 서글퍼 차마 들을 수 없으니 보는 사람 사람마다 눈물 절로 떨구었네.” 숙종은 당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 환국을 유도하여 수많은 신하를 죽음으로 내밀었고 조강지처였던 인현왕후를 내쫓거나 장희빈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만행을 저지른 비정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에게만큼은 누구보다 따뜻했던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양이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은 계속되는데 조선 17대 왕 효종의 셋째 딸인 숙명 공주는 온종일 고양이만 곁에 끼고 살아서 아버지 효종에게 ‘동생은 벌써 아이를 가졌다는데 너는 고양이만 돌보는구나’라는 꾸중이 담긴 편지를 받기도 했다. 또한, 세조를 구한 고양이라는 설화도 존재하는데, 세조가 조카 단종을 죽인 후 심한 피부병을 앓게 되었다. 그때, 오대산 상원사라는 절의 문수동자에게 치료를 받고 낫게 된다. 그래서 세조는 상원사를 찾아 예불을 올리는데 별안간 법당에 고양이가 나타나서 세조의 곤룡표을 잡고 물고 늘어졌다고 한다. 말려도 말려도 자꾸 옷자락을 물고 늘어지는 고양이를 보고 이상한 낌새를 느낀 세조는 신하들을 시켜 법당안을 샅샅히 뒤져보는데, 법당 안에 자객이 숨어있었던 것이었다. 똑똑한 고양이 덕에 무사히 자객을 물리친 세조는 상원사에 논 5백 섬지기를 내리고 매년 고양이를 위해 제사를 지내주도록 명했다. 또한, 왕명으로 고양이를 죽이지 못하게 하고 고양이 석상을 세우게 했다고 한다.

이처럼 매력적인 성격과 자태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고양이! 현대에는 고양이에 대한 다양한 편견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고양이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다분하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음과 동시에 길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거나 고양이 혐오자들에게 끔찍한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과거부터 왕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사랑스러운 생명체에게 따뜻한 눈빛과 관심의 손길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