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들고 스펙 도움 안 되는데…토익을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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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56772대학생들 평균 130만원 지출
‘신토익’ 바뀌면서 부담 늘어

한국의 영어공부 열기는 항상 뜨겁다. 유치원부터 영어교육을 시키는 건 이제 현상 축에 끼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영어공부에 매달린 학생들은 취업을 앞두고 토익(TOEIC)공부에 매달린다. 지난 5월 29일 전면 개정된 신토익이 시행되면서 토익 시험을 둘러싼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취업하기 위해 토익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해서도 승진이나 이직을 위해 또 토익 책을 집어 들어야 하는 게 요즘 2030의 모습을 소개한다.

‘구(舊)토익 열차가 방금 출발했습니다.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토익이 가고 신(新)토익이 왔다. 지난 5월 29일 치러진 시험부터 10년 만에 개정된 새로운 유형의 토익(TOEIC) 문제가 출제되고 있다. 신토익에선 듣기 문제에서 외국인 3명의 목소리가 나오고 읽기 문제의 지문은 더 길어졌다.

체감 난이도는 당연히 높아졌다. 그래도 YBM어학원 강남센터의 박정인 강사는 “단순히 ‘스킬’만으로 풀 수 있던 문제가 예전보다 줄어 난이도가 높게 느껴질 수 있지만 기본기만 제대로 갖춰져 있다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오랜 시간 구토익과 동고동락해 온 ‘프로 토익커(TOEICer·토익 준비생들을 일컫는 은어)’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중앙일보 청춘리포트팀이 파악한 대다수의 분위기는 이런 것 같다. ‘익숙해질 만하니까 토익, 너마저….’

그만큼 2030과 토익이 함께 보낸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지난해 9월 해양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한 국립대 기숙사에서는 ‘2개월 내 토익 성적 550점을 넘지 못하면 외출·외박 금지’라는 지침이 발표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가 접수되기도 했다. 청년유니온이 조사한 4년제 대학생의 평균 토익 응시횟수는 9회. 구토익을 보내고 신토익을 맞이하며 2030 토익커들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토익은 무엇입니까.’ 애환이 담긴 온갖 토익 뒷담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 “토익 비용 합치면 어학연수 다녀올 정도”

2년 넘게 토익 시험을 꾸준히 봐 온 취업준비생 윤정석(27)씨는 토익을 ‘적금’에 비유한다. 불입은 꾸준히 하는데 수령은 언제 할지 알 수 없는 적금이다. 윤씨는 “토익 때문에 들어간 돈을 다 합치면 과장 조금 보태서 1년 어학연수를 다녀올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이달 신토익 시험을 앞둔 그는 “당분간 적금 수령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토익커 1년 차 이모(28)씨는 지난 3월 한 유명 토익 강사의 토익 종합반 수업을 들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12시50분까지 100명 가까운 수강생이 모여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따로 스터디도 했다. 이씨는 “강사가 토익커 사이에선 워낙 유명해 수강 신청부터 경쟁이 치열했었다”며 “아직까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수강료만 날린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7학기 이상 학교를 다닌 대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토익 등의 스펙을 준비하는 데 사용한 교육 비용은 평균 130만4000원이었다. 대학에서 영문과를 졸업한 후 지난해 취업이 될 때까지 7년간 토익을 공부했다는 노여룡(31)씨는 “토익 응시료가 4만원 정도인데 매달 보는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아 과외 등 알바를 하며 돈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직을 목표로 한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모(33)씨는 토익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기업이 생각하는 가장 쓸데없는 스펙이 토익이라는데 막상 이직 지원서에 토익 점수를 빈칸으로 낼 생각을 하면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김씨에게 토익은 ‘맹장’이다. 딱히 필요할 것 같진 않지만 ‘없으면 좀 허전한’ 존재인 것이다.

문제는 점수를 올리는 게 쉽지 않다는 거다. 김씨는 “친구들에게 ‘토익 공부하느라 바쁘다’고 말하면 다들 ‘아직도 공부하냐, 그거 유형만 익히면 800점은 금방 넘지 않냐, 왜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하냐’ 등 잔소리를 한다. 그럴 때마다 700점대인 나는 자존심이 상한다”고 털어놨다. 직장 동료들에게는 ‘쓸모도 없는 거 왜 공부하느냐’는 소리가 듣기 싫어 토익의 ‘토’자도 안 꺼낸다고 했다.

지난 3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회원 946명을 대상으로 ‘토익 점수와 쓰임새 대비 드는 비용’에 대해 묻자 대다수가 ‘토익 장사하는 사람에게 돈 벌어주는 느낌, 지나치게 많다'(30.3%), ‘정말 취업에 도움 되는지는 모르는데 부적 사는 기분, 아깝다'(20.0%)라고 답했다. 응답자들의 목표 토익 점수는 평균 870점이었다.

# 토익은 ‘장삿속 밝은 상인’

“시험 결과는 꼭 다음 토익 시험 접수 기간 이후에 발표해요. 그러니까 ‘혹시 점수가 낮게 나왔을지 몰라’ 하며 다음 시험도 접수하게 되죠. 점수 결과를 본 뒤 추가 접수 기간에 접수하면 돈을 더 받아요.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어요.”

토익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대학원생 양모(27)씨가 속에 있던 말들을 쏟아냈다. 토익이 신토익으로 바뀌면서 응시료도 2500원 더 올라 4만4500원이다. 각 출판사에서는 신토익 문제집들을 끊임없이 출간하고 있고 학원들은 신토익 강의를 연일 홍보 중이다. 양씨는 “장삿속이 빤히 보이지만 그럴수록 여기에 휘둘리는 내 신세가 더 초라하다. 친구들끼리 농반진반으로 ‘흙수저는 토익 점수 따기도 어렵다’고 말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박모(27)씨는 지난 4월부터 뒤늦게 토익을 준비하고 있다.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문제집 세트를 구매하고 인터넷 강의까지 다운받았다. 하지만 뒤늦게 신토익 문제집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씨는 “미리 알아보지 못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다시 새 문제집을 알아보려고 하니 속이 쓰리더라”고 말했다.

밉지만 놓을 순 없다. 토익커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그렇게 애증의 관계를 이어온 만큼 2030 토익커들과 토익 간의 에피소드는 차곡차곡 쌓일 수밖에 없다. 전날 숙취로 토익 시험을 보다 조퇴한 사연, 토익 스터디에서 만난 남자 친구와 결혼까지 골인한 사연 등 토익과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1979년 미국 ETS사가 토익을 개발한 이후 국내에서는 한 해 약 200만 명이 토익을 치르고 있다. 신토익 시대가 와도 당분간 이 흐름은 계속될 전망이다. 2030의 ‘토익 스토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홍상지 기자

출처: LA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