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Ralph Bunche”

156

09091723q12_1
세계적인 명성만큼 UCLA에서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유명인들을 배출해 오고있다.
약 825명에 달하는 유명인들이 저마다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며 업적을 남기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UCLA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역사적 으로 바라봤을때에도 가장 저명한 Ralph Bunche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UCLA는 인종차별에 관하여 엄격해왔지만, Bunche는 어린시절부터 이미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자라왔다. 고등학교 졸업생 대표로 뽑혔던 그였지만, 시내 우등생 단체 에는 가입하지 못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대학교육은 생각지도 않았고 그에대한 열정도 없었지만 그가 가장 존경하는 조모의 적극적인 권장에 의하여 1923일에 열렸던 UCLA오픈 캠퍼스에 참여하게 되어, 대학이 조성하는 교육환경에 매료됬다고 한다.

UCLA에 진학하는동안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정점에 달했을 뿐만아니라 교실밖에서는 전교회장, 열렬한 토론가, 학생신문 칼럼니스트, 그리고 농구선수로서 다양한 방면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에 의하면, 대학시절을 통하여 그의 관점들이 더 넓어졌으며 항상 본인자신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찬 자신감이 더 확연해 졌다고 한다. 그는 UCLA를 졸업한이후, 하버드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스웨덴 출신의 사회학자’Gunnar Mydal’과 함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사회적 보장에 대한 연구 및 UN에 발표할 선언문 작성에 기여를 했다. 그는 항상 중동의 분쟁들 뿐만아니라 인간관계의 어떤 문제도, 해결될수 있으며 세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1948년, 그는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UN세계평화 유지운동에 그의 인생을 바치기 시작했다. 그가 돕고있었던 중재인인 ‘Count Folke Bernadotte’가 암살을 당하며, 그는 6개월간의 고군분투끝에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4개국으로 부터 휴전협정을 이끌어내는데 기여를했다. 1950년 UCLA학위 수여식에서 Bunche는 노벨평화상 수상에대한 권유를 받자, 처음에는 이런 영예는 개인이 받는것이아니라 UN세계평화 기구가 받아야 마땅하다며 거절을 하지만, 끝내 노벨평화상 수상을 하게되었다. 1969년에는 UCLA로 돌아와 캠퍼스에 Bunche Hall설립식에서 “UCLA는 나에게 있어서 모든것이 시작된 곳이며, 대학은 나에게 있어서 기원 및 기폭제 였다” 라는 말을 청중들에게 남겼다.1971년 6월 까지 Bunche는 질병에 의하여 UN기구를 은퇴하기 전까지 시민의 권리 와 세계평화 운동에 전념을 하지만, 그해 12월에 생을 마감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후에도, 그의 문서들은 Charles E. Young 연구도서관 그리고 Bunche Hall에 보관되있는등, 그의 족적은 UCLA에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