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스토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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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182104_1고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점심 시간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나를 부르더니 이상한 부탁을 했다. 팔을 휘두르면서 ‘She Bang’이라고 두번만 외쳐달라던가.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지만, 어리둥절해서 나는 물었다. “왜지?” 그들은 그냥 재미있는 것이라 말했을 뿐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고, 굳이 고집을 부릴 필요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대로 해주었다.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그것이 몇년 전 윌리엄 헝(William Hung)이라는 청년이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의 재현임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윌리엄 헝은 당시 형편없는 가창력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고, 나의 ‘친구’들 역시 내게서 그런 즐거움을 얻길 기대했던 것이다. 그밖에 직접적인 ‘인종차별’이란 것을 겪은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이후 내 정체성에 대해 곱씹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인’들의 말과 행동이 나를 계속해서 이 사회의 ‘타자(other)’로 내몰았다면, 그로부터 도망치듯 찾게 된 한국인/교민들 역시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내가 만난 한국인들이 흔히 지적한 것은 나의 한국어 ‘발음’이었다.

한국에서도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자란 내 말투의 독특한 억양이 그들은 유독 신경 쓰였던 걸까, 금세 “한국어를 굴려서 발음한다”거나 “발음이 특이하다”는 지적이 들어왔다.

그들 중 상당수는 쉬는 시간에 ‘미국인’이 자신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 이야기를 하며 창피해하던 이들이었다. 자신의 발음이 냉정히 지적당하는 것은 그토록 분개하고 부끄러워하던 사람들이 남의 발음은 그토록 쉽게 지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거치는 동안 나는 내가 ‘바나나’로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는 ‘미국인’과 ‘교민/한국인’ 양쪽 사회 모두에서 모두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로 쓰인다. 한국의 한 펑크 록 밴드는 이런 노래도 하지 않았던가.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얗지Made in Fuckin U.S.A미국에선 x밥 한국에선 봉멍청한 x발년들 질질 싸대지x 같은 바나나” – 삼청 교육대, <바나나>

유학생에 대한 선입견- ‘부모 잘 만나서 돈 쓰며 공부 잘한다’는-을 이만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가 또 있을까.

그래서 최근 일리노이 대학교의 한 학생 모임이 만든 “My Banana Story”(http://paradoxplatform.com/banana/) 라는 웹사이트가 반가웠다. 이 사이트에는 무수한 아시안 계 미국인 청년들이 ‘바나나’로서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두 세계 속에서 하나만을 고를 것을 강요받아온, 그러나 그 어느쪽도 자신의 일부일 뿐 전체는 될 수 없었기에 고민해온 이들이 여기에 존재한다. 한 조각의 바나나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