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1% 난 흙수저, 1만 시간 훈련으로 한계 넘었다”

190

박상영, 청춘을 위한 희망 메시지
‘할 수 있다’ 주문 외우니 길 열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기회 와
스스로 한계 정하지 말고 도전을
친구 만나면 당구 치고 영화도 봐
술은 소주 한 잔에도 얼굴 빨개져요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한마디지만 박상영(21·한체대)이 입을 여니까 특별하게 들렸다. ‘기적의 펜서’가 ‘체념 세대’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10일 리우 올림픽 펜싱에서 헝가리의 임레 게저(42)에게 10-14로 뒤지다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뒤 금의환향한 박상영. 22일 서울 마포구의 카페에서 그를 만나 꿈같은 올림픽을 끝낸 심경을 들어봤다.

기사 이미지

극적인 역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펜싱 국가대표 박상영이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그는 “비가 오면 무릎이 쑤시지만 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힘을 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 김춘식 기자]

“올림픽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금메달을 땄다는 실감이 나네요. 길을 걷다보면 많은 분들이 다가와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세요. 커피 한 잔을 건네는 분들도 많아요. 제 소셜 미디어엔 친구 요청도 셀 수 없이 많이 들어왔어요. 모두 수락할 순 없어서 감사의 메시지만 보내고 있지요. 하하.”

인터뷰 도중에도 한 20대 여성이 다가와 커피를 내밀면서 “박상영 선수의 결승전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고맙다”고 전했다. 박상영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연령층은 대부분 10~20대다. 열심히 해도 잘 풀리지 않는, 입시와 취업 준비에 지쳐 있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박상영은 “요즘 흙수저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출구가 안 보이는 답답한 심경을 표현한 말인 것 같다”며 “내겐 결승전이 그랬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주문을 걸었다. 그러니까 정말 가능성이 열리더라”고 말했다.

박상영의 역전 장면을 담은 한 포털사이트의 동영상 클릭 수는 260만 건에 육박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이 전국 성인 546명을 대상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묻는 설문에 ‘박상영의 역전승(35.2%)’ 이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그가 되뇌인 “할 수 있다”란 말을 녹음해 수 백 차례나 듣는 사람도 생겼다.

박상영은 “결승전에서 만난 임레는 굉장히 공격적인 선수다. 그런데 그날은 수비 위주로 플레이 하더라”며 “오히려 내가 조급하게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번뜩 정신을 차리고 수비를 강화했다. 마침 임레가 공격적으로 전환한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만약 임레가 전술을 바꾸지 않았다면 박상영은 어떻게 됐을까. 그는 “더 어려운 경기가 됐을 것이다. 그래도 난 끝나는 순간까지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라고 했다.

기사 이미지

결승전 당시 패색이 짙었던 박상영. “할 수 있다”며 최면을 걸고 있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박상영에게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도, 뛰어난 재능도 없다. 그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지만 잘하지는 못했다. 선천적인 재능은 기껏해야 1~2% 정도”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근력·유연성 등 기초 체력 테스트를 하면 그는 항상 하위권에 속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박상영이 올림픽 메달을 딸 거라고 생각했다. 리우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해낼 거라고 믿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상영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14세 때 처음으로 검을 잡은 박상영은 3년 동안 6시간만 자면서 깨어있는 시간 내내 훈련만 했다. 주말이나 휴가도 없었다. 그가 3년 동안 훈련한 시간은 1만 시간이 넘는다. 말콤 글래드웰은 2008년 펴낸 책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 동안 집중하고 노력하면 장인(匠人)의 경지에 오른다고 주장했다. 사춘기의 박상영은 1만 시간 동안 지루한 걸음을 반복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는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놀고 싶었다. 하지만 공부든 운동이든 어정쩡한 상태로 살고 싶지 않았다. 노력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박상영은 체념 세대에게 자신있게 말한다. “안된다는 기준은 자신이 만든 것이다. 이번에 안되면 다음이 있다. 또 그 다음이 있다. 한계를 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지난해 3월 왼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던 박상영은 당초 리우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했다. 그는 빨리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재활훈련을 했다. 그 때 의사가 “이러면 십자인대가 또 끊어져서 아예 무릎을 못 쓴다”며 그를 달랬다. 펜싱을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불안감을 떨쳐냈다. 지루하고 느린 재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그리고는 7개월 만에 피스트에 돌아왔다. 이날도 박상영은 왼무릎을 연신 만졌다. 그는 “피로가 쌓여서 무릎이 아팠다. 물리치료를 받아서 괜찮지만 앞으로 꾸준히 관리해줘야 한다”며 “앞으로 또 다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극복했기 때문에 또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귀국한 박상영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에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말했다. 바쁜 스케줄로 그의 운전기사가 된 어머니 최명선 씨가 아들의 건강을 걱정하자 박상영은 “어머니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박상영은 “아버지가 성공한 선수들의 자서전을 사주시면서 ‘유명해져도 겸손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박상영은 인터뷰 내내 진중했다. 친구들과도 이런 대화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절대 안 한다. 친구들과 만나면 당구를 치고, 영화를 본다. 가끔 술도 마시는데 소주 한 잔만 마시면 얼굴이 빨개진다”며 쑥스러워했다. 이런 말을 할 때 그는 그저 평범한 스물한 살 청년이었다.

글=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