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기다림을 견디는 것도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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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결여 된 것 중 하나는 ‘기다림’, 즉 ‘인내’가 아닐까? 왜냐하면 몇 분 혹은 몇 초만에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있어 더이상 ‘참는 것’에 익숙하지 않게 되었으며, 심지어 어떻게보면 불편함과 ‘인내’이라는 것이 우리의 머리 속에서 동일선상에 놓여지게 되어버린 것 같다.

빠른 인터넷, 빠른 일처리속도… 물론 빠름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성격으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편하게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다림’이라는 것이 저평가 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좌우당간 이 특성도 삶에 있어 결실을 보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어를 유창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 년전, 처음 미국에 올 당시에도 영어를 못했었다. 칼리지에서 ESL을 1년했다. 다국적의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여러 경험을 했으며, 깊은 생각을 하게 해 준 귀중한 기간이었다. 되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감사한 순간들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굉장히 조급하고 답답해 했었던 것 같다. 특히 유학생활 6개월, 1년, 2년 이런 식의 분기별로 나는 굉장히 나 자신에 대해, 특히 영어에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상대적으로 빨리 성장한다고 느꼈고 그에 반해 나의 영어실력은 굉장히 초라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 그 미국인 친구랑 어디 놀러다녀왔어” ”나 미국인 집에 파티 다녀왔는데” 따위의 말들은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고, 그러할수록 더욱 열심히 숙제를 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내 실력은 그대로 인 것만 같았다. 들리지 않고, 읽혀지지 않고, 써지지 않고,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말을 할 수 없는 그 상황이 너무 답답했으며, “나는 왜 이렇게 느리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었다.

한국의 내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취업이니 상사와의 트러블이니와 같은 일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동안, 나는 ‘영어’ 따위에 이렇게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해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과 기타 여러문제 등으로 인한 여러 복합적인 우울함이 내 머리속에 은연 중 자리잡고 있다가 순간순간 강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럴 때면 학교주변 혹은 집 주변을 걷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을 사먹는 등의 일들로 나의 시선을 돌리려 애썼지만, 그런것 이전에 대부분 눈물로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중 문득 드는 자신에 대한 막연한 실망감과 늘지않는 영어실력에 대한 불안함때문에 정처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중 정말 갑자기 그리고 한순간에 ‘영어’가 나에게 더 이상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마치 친숙한 ‘언어’로 들려지는것을 느꼈었다. 그 순간 영어는 더이상 ‘길을 걷고 있는 행인들이 쓰는 말’ 그 이상 혹은 그 이하도 아니게되었다. 만약 처음 영어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을때에 유학의 길을 접었더라면, 나는 아마 인내의 결실에 대한 그 절실한 귀중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시애틀에 있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자신들에게 어떠한 ‘순간’이 찾아왔었고, 그 후에 학업에 대한 그리고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어느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말을 한다. 그 사람들을 곰곰이 살펴보면 모두가 다 각자의 ‘기다림’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모두에게는 불현듯 막막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러나 반드시 그 순간을 꿰뚫는 또 다른 ‘순간’이 인내를 가지고 열심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어찌보면 미련해보일 수 있는 노력이 결국 결실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밑거름인 ‘인내’라는 디딤돌을 만들게 해 주는 과정이지 않을까. 모두가 ‘인내’후 찾아오는 달콤한 결실을 맛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