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룰’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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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 추문이 도화선이 된 ‘미투 운동’이 세 달째 이어지고 있다. 문화계, 교육계,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권력형 성범죄가 폭로되고 있는 상황이다. 남성 중심적 수직 문화가 공고한 기업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여성이 직장에서 경험한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면서 기업 문화의 개선이 요청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많은 남성은 미투 운동에 대항이라도 하듯, 여직원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그들과의 교류를 최소한으로 하겠다고 엄포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펜스 룰’을 직장 내에서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펜스 룰이란 현직 미국의 부대통령인 마이크 펜스가 2012년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한 철칙에서 유래한다. 그는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스캔들이 될 만한 모든 가능성을 사전에 배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남성들의 펜스 룰은 단순히 선포에 그치지 않았다. 중대한 회의뿐만 아니라 회사 업무 수행의 일련의 과정인 회식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직원을 배제시키는 행위가 실제로 수행되기 시작했다. 펜스 룰이 실제로 여성들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행위가 차별적임은 법리적으로도 명확하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6조에는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규정돼 있다. 또한, 이 같은 행위가 고용의 형태에서 이루어진다면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에 따라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물리게 된다. 정부는 펜스 룰에 대한 담론이 퍼지기 시작하자 펜스 룰은 위법 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하며, 근로감독을 통해 이 같은 차별 행위를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법리적 해석을 차치하더라도, 펜스 룰의 확산은 석연치 못한 점이 많다. 성추행을 저지르지 말라는 호소가 어떻게 여성을 배제하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지는 건지, 그 연결고리에 우리는 적극적인 의심을 표명해야 한다. 예컨대 펜스 룰은 일터의 권력 배분을 매우 확연하게 보여준다. 만일 여성이 ‘권력’을 가진 일터였다면, 현재의 펜스 룰은 결코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권력을 가진 여성을 배제한 남성들이 오히려 도태되는 양상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일터에선 남성에게 권력이 주어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차단과 배제는 여성을 더욱 해한다. 이 전제가 있어야 남성들은 펜스 룰을 무기 삼을 수 있다.

요컨대 펜스 룰의 확산은 미투 시국에서 남성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역설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확히 반대의 상황을 비춘다. 펜스 룰을 향한 열광은 직장의 권력이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증거인 동시에, 남성들조차도 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기꺼이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권력의 명확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런 권력자가 여성과 거리를 둘수록, 오히려 그 권력은 득세하고 유리천장을 비롯한 차별적 구조의 문제는 심화된다.

따라서 펜스 룰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남성들이 배워야 할 것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의 주체로 보는 것. 여성을 남성의 동등한 동료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게다가 성희롱과 성폭력을 피한답시고 여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행위는 남성이 남성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로 낮추는 격이 되는 것 아닌가? 그들이 그토록 자신들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던 것과는 반대되게 말이다. 그들을 명시적인 허락 없이 만지지 않기, 무례한 평가를 하지 않기, 그들을 동료로서 존중해주기. 펜스 룰은 결코 이 같은 인권 지향적인 방법에 선행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지척에서 꿈꿀 수 있어야 한다.

 

진민균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