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에이전트 겸 프로듀서 Harry Ufland 교수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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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로버트 드니로, 조디 포스터 등 할리우드 전설들의 에이전트로 오랫동안 일하며 현재는 프로듀서 겸 채프먼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Harry Ufland를 만나보았다.

  • 어떻게 영화 업계에서 일하게 되었나?

원래 꿈은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비즈니스를 배우고자 William Morris에서 시작한 에이전트 일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첫 작품을 제작하기까지 24년동안 에이전트로 일하게 되었다.

  • 보통 에이전트라 하면 유명인의 스케쥴을 관리하거나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에이전트로서 당신의 의무를 자세히 설명해 달라.

요즘은 에이전트의 일이 더욱 다양해지는 것 같지만, 당시 에이전트로서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재능 있는 사람을 발굴하는 것. 그리고 그들을 업계의 큰 손들과 연결시켜 재능을 펼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나는 항상 신인들과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문전 박대를 당해도 절대로 물러 나서는 안되고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때까지 끈질기게 쫓아다녀야 한다.

  • 당신이 에이전트로 일한 아티스트들은 모두 현재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아이콘이 됐다. 그 중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니로와의 인연이 유명한데 어떻게 그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나?

마틴 스콜세지는 그가 NYU 재학 중일 때 만든 작품을 보고 직접 연락을 했다. 그 당시에도, 지금도 내가 본 학생 작품 중에서 최고다. 반드시 계약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을 줄 테니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당시 나도 돈이 없었지만 그는 더더욱 돈이 없었다. 로버트 드니로는 마틴이 “비열한 거리”를 같이 찍어보고 재능 있는 친구라며 나에게 추천을 했다.

  • 당시 학생이었던 마틴의 작품이 유독 당신에게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스토리가 좋았고 카메라 워크가 좋았다. 그는 어두운 상황을 희화화하는 재능이 있었고 당시에는 볼 수 없는 신선한 시도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스타일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 지기까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유럽의 정서가 강한 마틴의 영화는 미국 대중들에게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계속 증명해 나가는 수 밖에 없다.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피카소가 될 수 있다.

  • 마틴 스콜세지와 20년동안 함께 했는데 한 사람과 이렇게 오랫동안 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나아가 에이전트가 갖춰야할 자질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내가 해야할 일을 했기 때문. 나는 회사의 이익이 아닌 그를 위해 있었다. 에이전트로 일할 때 나에겐 내 클라이언트가 먼저다. 여기서는(학교) 내 학생들이 먼저다. 마틴과 로버트 드니로가 아직 신인일 때, 돈 잘 버는 유명인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면서까지 그들과 일하는 나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나는 재능 있는 사람들을 발굴해 직접 스타로 키우는 것에 더 큰 보람을 느꼈다. 무엇보다 그들의 재능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에이전트와 클라이언트는 예술적 취향을 공유할 수 있어야한다. 단단한 신뢰관계를 쌓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모든 비즈니스에 해당되는 말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사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긴 에이전트 로서의 생활 끝에 원래 목표였던 프로듀서의 일을 시작했다.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다국적문화를 담은 영화들이 눈에 띈다. 민족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요즘인데 30년전 에 이미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아우르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로 어떤 이야기에 끌리나?

작품을 볼 때 가장 먼저 주목하는 것이 캐릭터. “솔로몬의 딸” (이란인 남편을 둔 미국인 여성과 그 딸의 이야기)의 경우,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평범한 캐릭터가 매우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면서 보여지는 처절함, 절망감, 모성애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현재 미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나쁜 상황에 놓여있지만 이것이 아티스트들을 자극시켜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지루한 작품을 내 놓을 수가 없다. 스탠리 큐브릭이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를 만든 것처럼.

  • 프로듀서로서의 경험은 에이전트 일과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하다.

프로듀서로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에이전트 때와는 달리, 싫어도 스튜디오가 정해준 사람과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프로듀서는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프로듀서로서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단 두가지였다. 사람들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거나 아니면 아예 만들지 않거나.

  •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서 원하는 인재상은 무엇인가? 이 업계로 취직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사람. 열정적이고 유니크한 사람을 원한다. 그런 사람들이 신선한 발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관련 경험이 없어도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해본 사람을 선호한다. 예를 들면 레스토랑이나 커뮤니티 서비스. 특히 레스토랑 서빙일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매우 긍정적인 경험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력서를 쓸 때 관심사를 꼭 쓰기를 바란다.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 예를 들어 푸드 크리틱 기사를 다 체크하며 엘에이 전역의 유명한 레스토랑을 꿰차고 있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클라이언트를 어디서 접대하는게 좋을지 조언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여러 미술관을 다니며 예술적 소양을 쌓기를 추천한다. 이 업계의 큰손들은 대부분 굉장한 수집가이다. LA에 있는 미술관 및 박물관 기부금의 70프로는 영화 업계에서 나온다. 예술적 소양은 그들과의 비즈니스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

  • 마지막으로 미래의 필름메이커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되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해 가길 바란다. 한국인은 한국인의 정서를 잃지 않은 작품을, 미국인은 미국인의 정서를 잃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서는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협동하여 융합된 정서가 녹아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