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의창] 샤워가 너무 하고 싶었던 하루, 반쪽 짜리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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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right side

아마도 한국에서 버클리로 돌아온 지 3일째 되는 날 이었을 것이다.

샤워가 너무 하고 싶었다.

아직도 새로 이사한 집 화장실 욕조에는 샤워 커튼이 없었다. 옆방에 사는 친구가 아빠랑 물건을 사러 나간 것이 아침이었고, 그래서 나는 오후가 되면 그 친구가 샤워 커튼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오후 세시가 되어도 별 기별이 없었다. 어쩌면 오늘 그 친구가 집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이 사방으로 튀지 않게 목욕이라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욕조는 집 주인이 미리 깨끗하게 씻어 놓은 것 같았다.

아직 샤워기를 트는 방법을 몰라서 욕조에 앉아 따뜻한 물을 받으면서 수도꼭지 이곳저곳을 만지며 연구를 해 보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 여러 집을 전전하면서 정말 이런저런 수도꼭지를 다 보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수도꼭지는 처음이었다.

욕조에 물이 가득 찰 때까지 나는 결국 샤워기를 트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 했다.

머리를 어찌어찌 겨우 감아낸 뒤, 새로운 물을 받으면서 다시 연구해 보았지만 이리 뜯고 저리 뜯어보아도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물을 세 번째 새로 받았을 때도 나는 여전히 수도꼭지와 씨름하고 있었고, 여러 가지 피로와 배고픔이 겹쳐, 두 손 두 발 다 들고서는 아이고, 정말. 샤워 하나도 제대로 못 하겠네 하고 그만 포기해버렸다.

그래도 이왕에 욕조에 앉아 물을 받아 놓았으니, 예전부터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 보기로 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코를 막고 욕조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이 참 재미있어 보이곤 했는데,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목욕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코를 막고 잠수.

물 안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될 수만 있다면 계속 있고 싶은 편안함이 있었다. 발은 기분 좋게 둥둥 뜨고, 따뜻한 물이 몸을 감싸주어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갑자기 화장실 밖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나는 긴장했다.

옆 방 친구가 돌아왔나?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화장실을 오래 쓰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를 하고 밖으로 나갔을 때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방 안에는 널브러진 여행 가방들과 도착하던 날 IKEA에서 사 온 매트리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피곤한 몸을 매트리스에 철퍼덕, 하고 누이니 창밖에 햇살이 눈부셨다. 오랜만에 씻은 몸을 햇볕에 녹이고 있자니  몸이 노곤해졌다.

창 밖의 햇살이 바람과 함께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방금 전 물 위에 떠오르던 기분 좋은 기억이 아직 몸에 남아있었다.

어쩌면 샤워를 제대로 하지 못함을 불평하기보다 난생처음으로 해 본 욕조에서의 잠수나 목욕 후 취하는 휴식의 달콤함을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텅 비어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아파트에서의 생활도 그렇게 다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2. 반쪽짜리 진실

“아빠는 내가 보는 것을 못 보고,
나는 아빠가 보는 것을 못 보고,
우리는 뒤를 볼 수 없으니
우리는 항상 반쪽짜리 진실밖에는 알 수 없나요?”

영화 Yiyi (하나 그리고 둘)에서 나온 대사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통찰력 있는 말이다.

아이의 말대로, 우리가 아는 진실은 나의 시각에만 한정된, 너무나도 불완전한 진실이다. 그래서 한 사람을 완전히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는 필히 실패하게 되어 있다.

당신이 한 사람을 완전히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그러한 함정에 빠진 것이다. 다른 말로, 당신이 아는 그 사람은, 오직 당신의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만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다른 상황에 있는 그의 모습은, 여러가지 이유로 당신에게 보이지 않는다. 당신 앞에 보이는 그 사람의 모습과, 당신이 보지 못 했을 때의 그 사람의 모습이 사실은 다르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속았다’고 생각할까?

어쩌면 당신은 그저 반쪽짜리 진실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고, 당신이 모르는 그의 모습을 알게 됨으로써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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