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들여 인수한 회사, 이젠 7000억짜리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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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협 회장, 한무경 효림 대표

세 단계로 좁혀 들어가 보자. 첫째, 여성 최고경영자(CEO)다. 둘째, 대학강사로 지내던 40세 때 1억원을 들고 사업에 뛰어들어 18년 만에 매출 7000억원대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여기까지만 해도 범상치 않은데 마지막이 남았다. 유통·서비스업이 아니라 남성들의 홈 그라운드인 정통 제조업(자동차 부품 산업)에서 승부를 냈다. 비결에 대해 “웬만한 남자들보다 독하게 살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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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경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은 “유통·서비스업처럼 여성이 강점을 가진 분야 뿐 아니라 제조업에서도 성공한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많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이제 여성 CEO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효림그룹]
40세 대학강사 때 사업 “피가 끓었다”
‘깎새’ 생산공들 마음 잡기 위해
초창기 공장 화장실 청소 도맡아

지난 1월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여경협) 회장에 취임한 한무경(58) 효림그룹 회장 얘기다. 지난 7일 협회장 취임 100일을 맞은 한 회장은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서 “학연·지연·혈연으로 똘똘 뭉친 남성들의 ‘유리 천장’이 여전하다. 여성 재계 수장으로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여경협은 1976년 설립됐다. 2500여개 회원사를 둔 국내 유일의 법정 여성경제단체다. 한 회장은 지난해 12월 임시총회 투표에서 241표 중 153표를 얻어 8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영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한 점, 여성 경제계에서 활발히 뛰어온 점을 평가받았다.

한 회장은 이화여대 도서관학과 석사를 마친 뒤 대학강사로 지냈다. 40세까지 남편과 아들을 둔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변곡점은 외환위기(IMF)가 몰아닥친 98년에 찾아왔다. 은행원 출신 아버지에게 쌍용차에 있던 지인이 당시 부도난 쌍용차 자동차 부품 사업부 인수를 제안해왔다. 아버지는 8자매 중 막내인 한 회장에게 제안서를 검토해 보도록 했다. 주부로 살던 다른 딸과 달리 대학강사로 뛰던 막내를 기특하게 여겨서였다. 한 회장은 “사업이라곤 생각도 해보지 못했는데 제안서를 검토하는 순간 피가 끓었다”고 술회했다.

해당 사업부는 적자를 내는데다 빚까지 떠안고 있었다. 외환위기 한복판이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매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 매물은 들여다볼 수록 ‘흙 속의 진주’ 같았다. 그는 “쌍용차 부품 사업부는 비록 무너지긴 했지만 기술력이 탄탄한 회사였다. 당시 한국 시장엔 중고차가 대부분이었는데 외환위기만 극복하면 곧바로 신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고 말했다.

예측은 들어맞았다. 1억원에 인수했던 회사는 경기가 살아나자 곧바로 일어섰다. 매출이 매달 2배씩 뛸 때도 많았다. 공장이 돌아갈수록 그도 바빠졌다. 그는 “작업복을 입고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며 “기계와 공정을 익히기 위해 공장 대부분을 그림으로 그려 통째로 외웠다”고 말했다. 외계어 같았던 용어를 익히기 위해 거래처를 만날 때마다 자동차 용어집과 영한사전을 들고 다니며 메모한 뒤 복기(復棋)하기를 반복했다.

브레이크 디스크, 프로펠러 샤프트, 너클 같은 자동차 부품을 다루는 생산공들은 일명 ‘깎새’로 불린다. 제조업계 중에서도 가장 거친 분야로 꼽힌다. 기름때 묻은 남성 직원들을 이끌어간 한 회장의 경영 철학은 일명 ‘화장실 경영’이다. 초창기 공장 화장실 청소를 그가 도맡았다.

“‘회사를 알려면 회사 화장실에 가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사업 초창기 공장 화장실은 말도 못하게 지저분했습니다. 이래선 업무도 엉망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닦았죠. 공장 들른 사람들이 청소부로 알고 ‘회장실은 어디냐’고 묻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회식·슬로건도 좋지만 제가 그렇게 나서니 직원들도 마음으로 따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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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기업인 전용 인터넷 은행 추진
“여성들, 매크로 트렌드 집중해야”

직원을 다잡은 뒤로는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사업 경험은 없었지만 전공 장점을 살려 각종 국내 자료와 해외 보고서를 검토하고 정리하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이후 경영 고비마다 내린 결정이 회사를 더 키웠다.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임대 공장을 주로 운영→자동차 부품이 점차 모듈화할 것을 예측해 모듈업체 ‘효림정공’을 인수→자동차 전장(IT)부품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전장 사업 진출→자동차 부품 업체로 크려면 쌍용차를 넘어 결국 현대기아차를 고객사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공급처 다변화→수출 확대 전략으로 성장하는 단계를 밟았다. 자동차 부품 회사인 효림그룹은 지난해 매출 7000억원대 회사로 성장했다.

거래처 대부분이 남성이다 보니 접대 자리도 잦았다. 그는 접대보다 납기·품질을 칼 같이 지키는 ‘정도 경영’으로 신뢰를 쌓아왔다. 그는 “중견기업에 골프 회원권·외제차 하나 없고 친인척이라곤 남편만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할 정도로 철저하게 선을 지켜왔다”고 강조했다.

유독 남성적인 세계에서 여성 CEO로 살아온 그는 “여경협 회장으로 지내는 동안 여성들이 최대한 남성들과 같은 ‘출발선’에서 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3년 임기 중 대통령직속 여성경제인위원회와 여성경제연구소 설립, 여성기업인 전용 인터넷은행 설립, 여성경제인 공동브랜드 개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선굵은 경영자 답게 ‘제2의 한무경’을 꿈꾸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묵직했다.

“여성일수록 ‘마이크로(micro) 트렌드’보다 ‘매크로(macro) 트렌드’에 집중해야 합니다. 큰 흐름을 읽다 보면 작은 흐름은 자연스레 준비하게 되거든요. 그래야 결국 여성도 주류가 되는 겁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J가 만난 사람] 1억 들여 인수한 회사, 이젠 7000억짜리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