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인의 청춘들이 말하는 청춘이란 무엇인가?

209
silhouette photo of people
credit: https://unsplash.com/photos/tysecUm5HJA

푸를 청 (青) 에 봄 춘(春)을 쓴 푸른 봄이라는 뜻의 청춘. 오늘, 당신의 청춘은 어떤 모습인가요? 2019년도 연말이 다가와 오고, 추워지는 날씨 때문인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날씨 때문인지, 1학기가 끝나가고, 중간고사들과 많은 과제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도 가끔 멍하니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늘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 청춘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학생들의 생각 또한 궁금해지게 되었다.

오늘 필자는 “청춘들이 말하는 청춘”이라는 주제로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의 생각을 독자들과 공유해보려 한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그들이 말하는 청춘에 대해 읽어보고 공감하며, 바쁜 일상과 지친 마음에 잔잔한 공감과 위로를 전하려 한다.

저에게 청춘은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나를 찾아가는 시기입니다. 대체로 우리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서 독립한 지 10년이 되지 않는 20대 사람들을 청춘이라 칭합니다. 새롭게 어른이 된 이들은 자신에게 생긴 자유를 어떻게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배우기 위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 과정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많은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기며 실험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런 타인들을 관찰하며 주체성에 대해 배웁니다. 짧지만 지난 2년 동안 저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 가운데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에 대하여 훨씬 많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선호하는 것들에 대해 배우며 이 여정을 걸어왔다면 최근에 제가 집중하게 되는 것은 “나를 아는 것과 나를 제한시키는 것을 분별하는 방법”입니다. 나에 대하여 배워 갈수록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을 더 많은 상황 속에 붙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항상 더 성장할 수 있고 그 과정 가운데 변화할 수 있고 더 많은 상황을 포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으며 청춘이 선물해준 여정을 계속해서 걸어가고 싶습니다.  – 이예희, Mount Holyoke College

일반적으로, 청춘은 어린아이와 성인 그 사이 어디쯤이라고 정의되곤 한다. 그 결과, 나이는 종종 청준을 정의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나이와 청춘의 강력한 상관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청춘을 좀 더 주관적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나는 청춘을 한 사람의 성향을 나타내고, 사람의 어느 특정한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고 정의한다. 청춘은 경험, 창의성, 동기, 욕망과 열정을 창조해낸다. 이는 청춘들이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용기를 가지게 한다. 나는 애덤 러바인의 노래 가사 중 “God, please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이라는 가사를 좋아하는데, 나는 이 구절이 진리의 요소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가사는 우리에게 나이라는 숫자로 청춘을 제한하는 것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나는 청춘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청춘이고,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절대 늙지 않는다. -권리다, Macquarie University

부모님이나 자신의 직업을 갖고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부럽다. 적어도 그들은 어떤 길로 가야 할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것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20대 혹은 청춘, 이 시기에는 나의 미래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참 막막하다. 지금 내가 공부하는 것이 내 길이 맞는 건가? 내가 이 길에 정말 열정이 있고 하고 싶은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이런 깜깜한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까지의 경험 그리고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미래에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무언가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그래서 많은 것들이 새롭고 인생에서 처음 도전하기 때문에 당연히 서툴러 좌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청춘이 좋다고 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래서 청춘이라는 말을 들으면 설레나보다. 청춘은 내가 살아가고 싶은 방향성을 찾고 그 방향성을 위해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한 사회구성원으로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박혜원, Minnesota State University

내가 어렸을 땐 청춘은 빨리 경험하고 싶은 시기였다. 청춘이란 그 글자 자체에서 난 싱그럽고 푸른 느낌을 받았었고 이미 그 시기를 경험한 사람들의 회상들이 멋있어 보였다. 얼른 20대가 되어 어른들이 말하던 그 시대 동안 할 수 있는 것을 누리기 만을 바랐다. 그러나 내 20대는 마냥 밝지만은 않다. 내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고 성공보다 실패가 많아졌다. 꿈보다 잠을 바라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건 꿈과 성공이 아니라 위로다. 어떤 유명한 글도 위로가 되지 않았는데 밤을 새우고 난 뒤 탄 지하철에서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 나처럼 모자에 맨투맨과 운동복을 입고 백팩을 맨 사람이 한둘이 아녔다. 나만 힘든 건 아니겠구나. 이 시기를 넘고 나면 나도 지금을 그리워하겠구나. – 이혜진, University of Minnesota

청춘 하면 20대란 생각밖에 안 든다 그럼 내 나이대 라는 건데 지금 청춘은 바쁘고 힘들고 정신이 없다. 대학 다니랴 공부하랴 인생 생각해야 되고 미래 생각도 해야 되고 그런데도 청춘이란 단어가 예쁘게 그려진 건 대부분 청춘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나이대가 20대가 훌쩍 넘은 나이 대분들 이 회고하는 느낌으로 다시 생각해봐서 그런 거 같다. 그러면서 미화된 게 아닌가 싶다. 나도 지금은 힘이 들고 버겁지만 내 청춘도 나중에 돌아보면 예쁘고 찬란해 보일까. 예쁘진 않아도 최소한 후회되는 청춘만은 아니길 그런 의미로 지금의 청춘이 여지없이 하고 싶은 것과 해볼 수 있는 건 다해보는 때였으면 좋겠다. – 이하은, MCPHS University

인생은 흘러가다 끝나기 마련이다. 누구나 몸이 불편해지고 나이가 들고 지켜야 하는 무언가가 있기 전에 젊은 시절의 우리가 있다.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이 누구에게는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청춘을 보내고 있다면 최선을 다하자. 후회 없이. – 정선무,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group of people holding hands while watching performance
credit:https://unsplash.com/photos/afrNpD1wKZU

청춘이란 눈 뜰 새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지만,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거나 아프거나 힘들거나 보람찬 순간. 과거를 되돌아봤을 때야 비로소 청춘임을 알게 되는 순간. 어찌 보면 아무 부질 없는 순간. 어쩌면 젊음의 무모함을 미화시키려고 포장하는 포장지. 사실은 그냥 인생의 한 부분. – 김의성, 연세대학교

내가 생각하는 청춘은 성인이 되기 전의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 그리고 점점 더 성숙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확한 시간과 청춘의 길이는 사람에 따라 상이하겠지만 적어도 나의 현재는 청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외로움은 나의 청춘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인 것 같다. 예전에 누군가 어른이란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해줬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친구들과 사람들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주할지 모르는 외로움과 서러움에 익숙해지는 방법과 친해지는 중이다. 불쑥 나를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이런 모든 기분들은 가족과 오랜 시간 떨어져 있는 나에게는 참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내 청춘의 일부분은 화려하고 행복한 부분이 더 많이 존재한다. 청춘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친구들처럼 가끔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다음날 고생을 한다던가, 아니면 불쑥 나를 찾아온 사랑이란 감정에 설레어하며 누군가의 연락을 간절히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는 설렘의 내용도 내 청춘의 일부분이다. 어떤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내가 엮여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고 가끔은 사람에게 데어서 상처 받은 기분도 모두 나의 일부에서 전부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내 청춘을 무엇이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감정, 기분, 그리고 나도 모르는 일들이 내 앞에 놓여있는데 그걸 다 속속들이 알면 그것도 참 재미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는 일들, 그리고 소소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또는 슬프게 해주는 일들을 마주하는 게 참 재밌고 이 모든 과정이 나의 청춘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경험이라고 여기고 살아가는 중이다. -구민지, Mount Holyoke College

청춘은 빈 도화지 같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 단어들이 돈이나 사회적 위치 이런 말들과는 다르지 않은가. 그래도 사람들은 청춘이 좋다며 넋두리를 뱉는다. 청춘은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때인 것 같다. 내가 누군지를 그려가는 과정이고 그릴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갈팡질팡해도 이 자체가 아름답다. 사람들은 물감을 고르듯이 도전하고 붓질을 하듯이 경험을 얻는다. 책임감이 늘어날수록 물감을 들던 손은 다른 곳을 향하고 그림을 말하는 걸 듣기보다는 빠르게 사회에 물들어간다. 완전히 익숙해진 후, 결국 ‘나잇값 못한다.’, ‘주책이다’라는 말을 하며 살게 된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멈춰 서는 것은 청춘의 끝이다. 무언가가 나를 설레게 하여 내일을 기대하고 다시 붓을 잡고 싶은 원동력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청춘이지 않을까 싶다. -강민찬, Penn State University

푸를 청, 봄 춘. 나는 지금이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청춘의 시작은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했던 16살부터가 아닐까? 씨앗에서 잎이 나고, 풀이 자라는 과정이 나의 성장 과정이라면, 꽃이 피기 시작하고 청춘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을 시작하기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도, 다양한 경험에 열매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청춘은 조금 서툴다. 최근 한 강연에서 사담으로 20대 후반, 30대 초반이 되면 옷 입는 스타일이 정리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전에는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조금 안 어울리고, 부족해 보이기도. 혹은 조금 과하고, 어색해 보이기도.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것이 청춘이 아닐까? 나는 그 과정에 있다. 나는 청춘이다. – 전찬우, 한국외국어대학교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청춘에 관한 글을 부탁받았을 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국어사전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그런데 문득, 아직 한창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사전의 뜻이 마치 봄과 여름, 가을을 넘어 어느덧 시린 겨울을 보내고 있는 지긋한 노인이 오랜 시절 그의 봄을 회상하며 미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봄은 결코 푸르지만은 않다. 때론 아득한 한기가 족쇄와 같은 얼음을 얼리며, 때론 장대비와 우박이 매섭게 쏟아지고, 또 때론 노랗디 노란 모래바람들이 숨통을 틀어막기도 한다. 그래서 봄은 형형색색의 만물이 태동하는 계절이지만, 저마다의 아픈 성장통을 겪는 계절이기도 하다. 우리의 봄도 그렇다. 한창 튼튼하고 아름다울 시기이기도 하지만, 열심히 준비했던 시험에 낙제하고, 갈망했던 회사에 낙방하고, 눈동자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람들과 이별하고, 내 생각과 사실은 한껏 달랐던 나를 발견해 상실감에 빠지고. 우리 모두는 태동하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아픈 고통을, 그리고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라 더 아픈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륜이 지긋한 노인을 나는 반박할 생각이 없다. 왜 이 노인은 봄을 그저 푸른 봄, 청춘이라고 표현했을까. 나에게 아직은 몹시도 어려운 질문이지만, 감히 짚어보건대 쓰라렸던 봄이 지나면 푸르른 잎사귀들과 뜨거운 햇살로 가득 찬 여름이 오고, 또 여름이 지나면 풍성히 여문 황금빛의 곡식들로 찬란한 가을이 오듯이, 우리의 성장통 뒤에는 한껏 푸르르고 또 푸르른, 많은 고통들로 단단히 여물어진 우리를 큰 세상에 한껏 펼칠 수 있는 앞날들이 기다리고 있어서가 아닐까. 존경하는 김난도 교수님께 한 말씀 올리고 싶다. 그저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픔 뒤에 있을 아뭄, 그리고 그 뒤에 있을 단단함과 찬란함이 기다리고 있기에 청춘이라고. 청춘은 그저 버티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대하고 바라는 것이라고. 아프지만 아름다운 청춘의 시기에 있는 나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묻고 싶다. 여러분의 성장통 뒤에 있을 여름은, 그리고 가을은 무엇이냐고. -정채훈, London School of Economics

woman throwing her academic hat
credit: https://unsplash.com/photos/sI1mbxJFFpU

청춘이란 지나간 시간과 지금이다. 50대는 40대를, 40대는 30대를, 30대는 20대를, 20대는 10대를 보며 청춘이라 한다. 나의 청춘은 나에게는 지나간 시간이며 남들의 눈에는 지금인 것이다. 청춘이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누군가는 경쟁이라, 누군가는 자기 계발이라, 누군가는 취미라 누군가는 목표라 칭하지만 나는 하루하루 무엇이든,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살아간다. 청춘은 그를 위한 원동력이다. –안창주, Penn State University

“내가 생각하는 청춘은.. 환자분들 보면서도 많이 느낀 건데..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나이/시간 개념보다는 난 마음가짐 같아. 70살이되 서도 청중일 수도 있는 거고 청춘은 항상 존재하는 거 같아. 새로운 시도 두려워 안 하고, comfort zone에서 벗어난 도전 해보기도 하고, regardless of the age, constantly challenging ourselves to grow as a person mentally and spiritually. 40, 50, 70살에 드디어 글 쓰는 거 배우고 학교 가서 공부하는 것도 진정한 청춘 즐기는 거라 생각하고. 너무 당연한 뻔한 얘기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 -지예은, Columbia University

제가 내린 결론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청춘의 정의란 “현실의 각박함에 물들지 않은, 어쩌면 허황한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기간” 대충 이런 것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 얘기로 넘어가자면,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아, 나는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겁니다. 사전적, 사회적으로 청춘이란 단어를 정의할 수 있지만, 그것이 내 삶에 적용되지 못하는 데 어떠한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춘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것이 나랑 무슨 상관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에 어떻게 도달할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답에 대한 접근법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우연히 튀어나왔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사회인 야구 대회에서 이겼다며 보내주신 사진에 있었습니다. 저는 드디어 청춘이라는 난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였습니다. 일단, 앞에 제가 청춘이라는 것을 느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은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매일같이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청춘이란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습니다. 청춘은 생각보다 단순한 개념이었습니다. 청춘이란 그저 자신의 한계를 미리 긋지 않고(그 한계가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 그 무엇이 되든 간에),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청춘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주어진 틀에 맞추지 않고 노력해 나가는 모습은 사람의 한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개개인의 삶의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별 생각 없이 던지는 청춘이란 개념의 정의를 본인의 삶에 진정으로 실현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단순히 우리의 “삶의 일부를” 청춘에 국한하는 것은 청춘의 정신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정 나이가 지나면 청춘 정신을 버리고 현실에 타협해서 사는 것이 맞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저는 저희의 삶 전체가 청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러한 청춘의 삶을 이끄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도 제 아버지를 보며 그러한 삶이 어떠한 삶인지를 지금도 보고 배웁니다. -김태서,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고삼 가을부터 압구정에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 디저트 막내로 본격적인 일을 시작했다. 스무 살에는 핸드크림은커녕 늘 물에 닿아 갈라진 손등에 연고나 바르면 다행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떠나지 않고 한길을 쭉 걸어왔다. 21살에 프랑스로 유학 와 학교 다닌 것 까지 합해보면 주방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다. 함께 요리를 배우자고 시작했던 동기들 240명 중 현직에 남아있는 숫자를 세보니 열 손가락을 겨우 꼽는다. 십 년 차에 접어드니 예전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좋은 셰프란 어떤 셰프인지, 좋은 업장은 어떤 곳인지 좋은 사수란 어떤 사람인지 등등. 어릴 때 보았던 시트콤 같은 삶은 보내지 못했지만 돌이켜 보니 아쉽지 않은 이십 대 초반을 보냈다. 살아오면서 나에게 있었던 좋은 일은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이 되어주었고 나쁜 일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은 파리에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디저트 셰프 드 빡띠(디저트 책임자, 회사로 치면 팀장쯤 된다)로 일하고 있다. 하루 기본 13시간을 서 있고 일 하느라 밥을 서서 먹기 일수다.요새 잠은 다섯 시간, 많으면 여섯 시간을 잔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에 부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나는 나의 현재에 자신 있다. 당당하게 잘 살고 있노라고 자부할 수 있다. 시간을 쪼개 디저트 서적을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으려 꾸준히 손편지를 쓰며 매일 엄마에게 짧더라도 안부전화를 한다.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것들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졌으며, 이 순간도 지나고 보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됨을 알기에, 먼 미래에 스스로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치열한 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지난 십 년은 잘하는 놈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놈이 이긴다는 교훈과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준 시간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청춘 아닐까? –권근영, L’institut Paul boc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