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아이오와에서 사역한 한인 목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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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20일, 아이오와 시티에 위치한 온누리 침례교회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에게 축하를 하며 덕담을 건낸다. 이 한사람, 바로 이종구 목사다. 이 날은 이 목사에게 누구보다 더 특별한 날이다. 다사다난했던 30년 동안 미국에서 목회자로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목사를 인터뷰하며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들여다봤다.

이 목사가 30년 동안 미국에서 목회를 했지만 그는 사실 한국 토박이다. 1947년, 경기도 여주군에서 태어난 그는 초중고를 서울에서 졸업하고 경희대에 진학해 법학 전공을 하며 검사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그의 꿈과는 달리 졸업 후 코리아헤럴드에 취업해 12년 6개월 동안의 근무 중 신의 부름을 받아 목사로 전향하게 됐다.

목회를 하면서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일들도 많았지만 신앙심과 신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며 여러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그는 아직도 그가 믿는 종교에 대한 열정이 넘쳐 보였다. 수많은 에피소드를 뒤로하고 은퇴하는 소감을 묻자 그의 얼굴엔 아쉬움이 느껴진다.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내가 바라고 기대한 요소와 자질을 갖춘 젊고 활기찬 후임자를 잘 고른 것 같아서 감사하다”며 입을 뗀 그는 교회와 후임 목사를 위해 계속 기도할 것이라고 한다. 이 목사는 “나는 언제나 비전이 컸고 지금도 비전을 가지고 있다”며 앞으로 목사로서의 사명은 다했지만 다음 목적지인 파나마에 가서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의지를 비쳤다.

목회자로서 제일 기억에 남는 추억은 성도들과 함께한 추억이 대부분이다. 그는 성도들이 있어 힘든 순간들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성경 공부를 시키던 어린 아이들이 지금은 다 큰 어른이 돼 있어 감회가 새롭다고 전했다.

“외롭다. 외롭고…또 때로는 외롭고 아쉽다고 할까?” 이 목사에게 30년간 타지에서 목회자로서의 삶을 묻자 나온 그의 첫 답변이다. 이 목사도 사람이기에 때론 영적으로 불안감도 느꼈다고 한다. 또 가정에 소홀했던 것이 큰 아쉬움 중에 하나라고 답했다. “내가 목회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생활적으로나 심적으로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아빠로서 내가 해줘야 할 일들을 못해줬다고 생각한다”며 미안함을 표했다.

한국과 미국에서도 깊은 신앙생활을 해 본 그는 한국 교회와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의 제일 큰 차이점을 권위의 차이라고 정의했다. “이곳 미국에서 특별히 이민 교회에서 사역한 목사들은 주로 섬긴다. 한국에선 섬기기 보다는 섬김을 받고 권위를 내세운다”는 차이점을 꼽으며 최근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목사는 그의 교회가 위로, 격려, 소망을 주는 쉼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선한 역할들을 자초함으로써 받는 교회가 아닌 주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큰 노력을 했다고 전했다. 한국문화와 음식 등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부수적인 영향력이 있다고도 말했다.

그 와중에도 종교의 순수성을 잃으면 안된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교회에 이념 같은 게 들어오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치 성향을 신앙보다도 더 우선시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없지않아 있다”며 “정치와 신앙이 합쳐지면 부패하고 잘못된 길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우려를 표했다. 정치는 정치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명확한 선이 있으면서 사회, 문화 방면에서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순수한 교회 및 종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의 삶이 그랬듯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끈기를 가지고 참고 나아가라”며 훗날의 목회자들, 종교인들을 격려했다. 은퇴식을 마치는 이 목사의 얼굴에서 아쉬움, 후련함, 기대감이 공존하는 것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