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한 유학 원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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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불구하고 언제나 수 많은 사람들이 기회의 땅, 미국으로 이민 또는 유학을 오고 싶어한다. 누군가는 간절히 살기 위해서, 자녀들에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혹은 막연히 부푼 꿈을 갖고 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으로 온다.

한국에서 평범하게 중학교 2학년을 다니던 무렵, 부모님께서 영주권이 나와 곧 이민을 가야하니 준비를 하라는 말을 하셨다. 그 땐 어리둥절 했었다. 영어는 학교에서 의무적이라 배운 것 뿐이지, 미국이라는 나라는 나에게 매우 생소 했다.심지어 캘리포니아라는 주 자체를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약속된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흘러갔고, 정들었던 동네와 친구들과 헤어짐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2009년 7월 3일 나와 가족들은 미국 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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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오자마자 나는 집 앞에 있는 Middle School에 입학을 하러 갔는데, 그 자리에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나는 미국에서는 High school에 가야하는 나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근방에 있는 학교를 추천 받아서 나는 La Mirada High School 9학년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나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중학교 졸업장이 없는 특이한 케이스가 되었다.

미국 학교에서 보낸 첫 날은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악몽같은 기억일수록 뇌리에 더 오래 남는다는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첫 날 수업 중 하나는 Art 였는데 선생님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지난 여름 방학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발표를 해보라고 하셨다. 내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될지 마저 정리가 되지 않고 결국엔 잘못 말해버렸다. “I went to Korea.” 딱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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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겠지만 미국 학교 생활은 생각보다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같이 점심 먹을 친구를 찾기 위해 고민을 해야만했다. 같이 Algebra를 들었던 정말 착했던 외국인 친구와 함께 할 때도 있었고, ESL에서 만난 베트남계 친구와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머지않아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 자연스레 그 무리에 끼어서 같이 지내게 되었다. 그 친구들을 만나 미국이라는 나라에 정 붙이기는 좀 수월했지만, 사실 그 때 마음고생을 좀 더 하더라도 미국인 친구들과 더 붙어 다닐 걸 하는 그런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만약 그랬다면 현재와 다른 내 모습과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한국의 고3 과도 같은 11-12학년이 되었고, 주변의 몇몇 친구들은 원하는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SAT, 대외활동, GPA, AP 등 입시준비로 바빴다. 그들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 정도의 노력이겠지만 나 또한 Honors Class를 듣고 SAT Tutoring 을 받았다. 당시엔 뚜렷한 목표가 없었기에 대학 자체에 크게 욕심은 나지 않았다. 1순위 대학에는 붙지 못했지만 2순위 대학에 붙었다. 그러나.. 나에게 Seniority 라는 질풍노도의 12학년 2학기가 되었고 모두가 예상하는대로 성적을 매우 좋지않게 받아 붙었던 대학마저 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너무 철이 없어 크게 낙심하지않고 고민하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닐 땐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다양하게 선택하고 그게 나의 흥미에 맞는지 아닌지를 탐색하는 기간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수박 겉핥기 정도의 내용을 배우지만 최소한 내가 더 공부하고 싶은 과목인지 아닌지는 구별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난  Interior Design에 호기심이 있어서 수강을 했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물론 교수님에 따라서 그 수업의 흥미도가 좌지우지 되는 경우도 있다. 아쉽게도 나의 케이스도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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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입 준비를 하면서 진지하게 “내가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일까?” 고민 끝에 Psychology로 정했고 감사하게도 UC IRVINE에 편입하게 되었다. 약 9년의 이민생활을 하면서 항상 후회가 빠진 적이 없었다. “이랬으면 저랬으면 좋았을걸..” 했지만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이야기 속에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현재 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