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독립기념일을 맞이한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독립을 위해 투쟁한 호국영령을 기리는데 열중일 것이다. 비록 오늘, 이달이 대한민국의 호국영령을 기리는 날로 지정된 것은 아니겠지만, 해외에 나와 그 누구보다 가슴속에 애국심이 들끓는 우리들도 미국에서 찾을 수 있는, 모두가 아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
대한인국민회 / 국민회관 기념관
역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박용만, 안창호 선생 등에 의해 창립되었다. 당시 미국 하와이의 합성협회(Sep. 1907)와 샌프란시스코의 공립협회(Apr. 1905) 연합으로 창설되었던 국민회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대동보국회(Mar. 1907)와도 연합하여 대한인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 Feb. 1910)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1921년 이승만이 대한인국민회를 탈퇴해 동지회를 설립, 갈등을 빚으며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2년 4월, 윤봉길 열사의 그 유명한 훙커우 공원 의거로 인하여 안창호 선생이 배후로 체포되면서 대한인국민회는 이승만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뒤로는 특별한 지도자 없이 순수 교민 단체가 되었다.
현재: 주소는 1368 W Jefferson Blvd, Los Angeles, CA 90007 이다. 1935년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하였던 대한인국민회 주변 지역에 Bay Bridge 건설이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대한국민회관은 철거되었다. 이후, 1938년에는 대한인국민회가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였고 이곳에 대한인국민회관이 준공되었다. 이후 1974년 국민회관은 LA 한인 연합 장로교회에서 매각되었다. 2003년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으로 대한인국민회관을 복원하였고 개관한 것이 현재에 이른다.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은 일반인도 방문이 가능하다.
안창호 가족 거주지 / USC(남가주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족들이 1937년부터 1946년까지 실제 거주하던 곳이다. 도산 선생의 ‘생가’라는 표현도 있지만, 도산 선생은 실제 독립운동을 위해 120개국 200여 개 도시를 방문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여 거의 거주하지 않았기에 생가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현재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혹은 남가주 대학교 구내 있으며 한국학연구소로 쓰이고 있다. 남가주 대학의 규모가 커지며 주변 부지를 사들임에 따라 대학 부지가 되었다. 그동안 남가주대학 공과대학 연구실로 사용되었으나 남가주대학의 재개발에 따라 지금의 자리에 통째로 옮겨져 2006년 3월 29일 한국학연구소로 탈바꿈하였다. 당시, 한인사회 커뮤니티의 구심점이 된 곳이다.
도산 안창호 우체국(Dosan Ahn Chang Ho Post Office)
LA 한인타운 6가에 위치한 도산 안창호 우체국은 2004년 미연방의회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업적을 기려 명명한 기관이다. 하지만, 우체국이 입주한 건물과 부지를 포함한 부동산이 2016년 5월 ‘베스 인베스트먼트’와 ‘SBS 프라퍼티스’로부터 1400만 달러에 매각되었다. 2017년 3월 연방 우정국은 이전하는 우체국의 명칭을 존속기로 결정하였다.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인터체인지(Dosan Ahn Chang Ho Memorial Interchange)
2002년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미주 한인사회의 안정을 위해 힘쓰신 도산 선생을 기리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케빈 머레이 상원의원이 ‘도산 안창호 인터체인지 명명 결의안’을 제출하였다. 결의안의 통과로 2004년 6월 11일 현판식이 거행되었다. ‘도산 안창호 기념 인터체인지(Dosan Ahn Chang Ho Memorial Interchange)’라고 쓰인 표지판은 로스앤젤레스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10번 프리웨이와 110번 프리웨이가 서로 만나는 곳에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미국 남가주 독립운동의 핵심인 인물이다. 오늘날까지도 가장 유명한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며 타국에서까지 한인과 그 업적을 인정한 타국인에게까지 인정받은 분이시다. 비록 1938년, 광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셨지만, 우리는 지금까지도, 해외에서까지 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