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4년 후 너는 미국의 유명한 4년제 대학교에서 졸업을 앞두고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면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대꾸했을 것이다. 4년 전 나는 한국의 대학교에서 멀쩡히 2학년으로 재학 중이었고, 유학이라고는 한번도 꿈꾼 적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미국으로 가자는 결심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대학교의 졸업 요건에 영어회화 과목이 있었는데, 그 수업을 C로 통과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대학 수능영어도 1등급으로 패스한 나인데, 그깟 일상 영어회화쯤은 거뜬할 거라고 자신했었다. 하지만 수업 첫 날, 나는 원어민 교사의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에 비해 다른 학우들은 유창하게 교수와 대화하는 것을 보며 쓰디쓴 패배의 맛을 알고야 말았다. 가장 창피했던 것은 영어로 자기 학교 소개하기 시간이었다. 사람들의 앞에서 가뜩이나 긴장했던 나는 계속해서 같은 말만 버벅거리며 반복하다가 결국 발표를 중도 포기하였고 나는 D를 받았다. 그 여름, 무턱대고 부모님을 졸라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왔다.
처음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렸을 때의 떨림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다. 친구들과 가족들의 수많은 신발, 화장품 선물 부탁 리스트와 함께 혼자 먼 타지에 내린 나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었다. 내가 혼자 잘 할 수 있을까, 길은 잘 찾을 수 있을까 등 여러 가지 걱정들을 현실감 없이 떠올리며 보안 검색 대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에 까다롭게 생기신 분이 내 서류를 검토 하였는 데, 그 때 그가 나에게 테러와 관련된 행위를 하려고 들어왔냐고 물었던 것 같다. 물론 그가 기대했던 대답은 No였겠지만,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패닉에 빠져있던 나는 Yes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나는 그 길로 Secondary Security Screening Selection으로 인도되었다. 4시간의 기다림 끝에 그들은 나를 풀어주었고 나는 다시 한번 영어에 대한 굴욕을 맛봤다.
공항에서 고초를 겪고 영어 못하는 서러움에 휩싸였던 나는 어학원에서 실제 영어를 배우면서 자신감을 회복해갔다. 영어로 한 마디도 못 알아듣고 말할 줄도 모르던 내가 연수원의 가장 높은 반까지 올라가게 된 데에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턱대고 내뱉는 들이대는 태도가 가장 큰 요인이었다. 내가 하는 말이 완벽하길 바라고 완벽하게만 말하려고 한다면 누구도 내 실수를 지적해 줄 수가 없고 실력은 늘지 않는다. 같은 반에 나이가 50이 넘은 스페인 학생이 있었는데, 그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그녀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항상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으며 실수를 지적 받는 것을 언짢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 함께 다니며 자신감을 배웠고, 공항에서 직원과 농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영어 실력의 향상 외에 어학 연수원 시절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것은 어학원 바로 옆에 있던 대학교 학생들과의 교류였다. 그 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미국 대학교는 한국의 대학교와는 많은 것이 달랐는데, 학교가 학생들의 자발적인 수업 참여와 교수의 능동적인 피드백의 공간, 그리고 다양한 문화의 집합체라는 점이었다. 학교 수업에서는 일방적으로 교수가 가르치는 것을 넘어 학생들끼리 토론할 시간이 주어지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질문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또한 학교 밖에서도 학교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클럽 활동과 다양한 문화에 대한 배움이 학생들을 쓸모 있는 인재로 길러내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보며 미국 대학교에 대한 환상과 열망이 내 안에 자리잡았다. 어학연수가 끝나던 해에 나는 2년제 대학교에 입학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2년제에서 4년제 대학교로의 편입을 노리듯 나도 4년제 대학교를 궁극적인 목표로 정하고 커뮤니티 컬리지를 다녔다. 원하는 대학교가 있었고 반드시 입학하고야 말겠다고 의지를 불태웠었다. 매번 밤을 새워가며 시험 공부를 하고, 지원서에 도움이 된다는 교외 활동에 이것 저것 참여해가며 노력했지만 1순위 대학에 떨어졌고 심지어 2순위 대학에서도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 때 나는 내 유학 생활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했고 매우 낙담했었다. 하지만, 정말 내 유학 생활은 실패한 것일까? 내가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해도 내가 그 학교와 맞지 않거나 선택했던 전공이 내 길이 아니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혹은 아예 유학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원하는 직장에 취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유학 입시에서 좌절했다고 우리의 유학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는 단지 수많은 유학의 길에서 하나를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