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에 관한 흥미로운 진실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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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에는 프랑스 사람들의 선물로 뉴욕에 도착한 아주 유명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바로 자유와 희망,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1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몇 가지 변화를 거쳤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사실 5가지를 알아보자.

Photo By: Spc. Sarah Martens

1. 처음 프랑스에서 도착했을 때 자유의 여신상 색깔은 페니와 같은 갈색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철 125t을 사용하여 철로 내부 골격을 만들고 겉면에는 구리 31t을 씌워서 제작되었다. 그래서 자유의 여신상이 처음 세워졌을 땐 반짝이는 갈색으로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구리에 녹이 슬어 지금의 청록색으로 변하게 되었다.

동상의 색깔이 변하자 뉴욕시 공무원들은 처음 동상이 세워졌던 그때 그 구리색으로 복원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뉴욕 시민들은 푸른색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이에 반대했고, 결국 색 복원 사업은 이뤄지지 않아 현재 푸른색을 유지하고 있다.

 

2. 자유의 여신상의 모델은 조각가 바르톨디의 어머니이다.

프레데릭 바르톨디는 자신의 어머니 샬럿을 자유의 여신상 얼굴의 모델로 사용했다. ‘자유’를 여성에 비유하여 자유의 여신상을 설계하고자 고심했던 그는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여성,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자유의 여신상 설계를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모델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바르톨디는 어머니를 닮은 모델을 구하게 되었고, 결국 어머니를 닮은 모델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는 마침내 어머니를 닮은 아내의 얼굴을 보고 자유의 여신상을 완성하였다.

 

3.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선물 받고 미국이 직접 조립해서 완성했다.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 선물로 프랑스에게 받았지만 실제로 미국 땅에 전달된 것은 1885년 1월이다. 이때 여신상이 통째로 운반된 것이 아니라, 여신상의 겉면을 구성하는 300개의 구리판을 프랑스에서 제작한 후 배로 미국으로 운반해 4개월 동안 재조립했다. 이때 운반 해체 비용이 없어서 방치되어있다가 이 사연을 들은 기자 퓰리처에 의해 신문 모금 캠페인이 벌어졌다. 이 기금을 이용해서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에 완공된다.

 

4. 자유의 여신상에는 자유, 평등, 그리고 노예해방의 의미가 담겨있다.

바르톨디가 제작한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이 이룬 자유와 평등이 7개 대륙으로 햇빛처럼 퍼지는 것을 나타내는 7개의 뿔로 된 왕관을 쓰고 있다.  왼손에 든 책에는 ‘JULY IV MDCCLXXVI’가 적혀 있는데 이는 1776년 7월 4일, 즉 미국 독립기념일이기 때문에 미국 헌법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오른손에 든 횃불은 세계만방에 이성의 빛을 밝히는 것을 상징한다., 바르톨디가 노예 상태에서의 해방을 묘사하기 위해 자유의 여신상은 끊어진 쇠사슬을 밟고 서 있도록 제작했다.

 

5. 자유의 여신상이라는 이름은 사실 별명 중 하나였다.

현재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불리는 이 동상은 America’s Freedom, America’s Great Lady, Aunt Liberty, Bartholdi’s Daughter, Giant Goddess, Grande Dame, Green Goddess, The Lady Higher Up, Lady of the Harbor, Lady on a Pedestal, Lady with a Torch, Mother of Exiles, Mother of Freedom, Saint Liberty, the Spirit of American Independence 이렇게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도 별명 중 하나로 처음 바르톨디가 미국에 선물했을 때는 ‘세계를 비추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