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외교관,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는 말했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제까지 현대화된 시대를 맞이하며 “역사”의 존재를 지루하고 따분한 존재로만 여겨왔던 것 같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살펴보며 과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미래를 위한다면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로, 방대한 미국의 역사 기록 중 현대 시대까지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미국의 중대 사건 5가지를 선정하여 시대별로 나열하여 여러분께 소개하려 합니다.
1.남북전쟁 – 1861년~1865년
남북전쟁은 국가를 만들기 위한 비싼 전쟁이었다. <제임스 러셀 로웰>
현재의 미국의 모습과는 달리, 본디 미국은 남쪽 – 아메리카 합중국과 북쪽 – 아메리카 연합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북부의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에이브러햄 링컨>을 대통령으로, 그리고 남부의 목화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인데요. 노예 문제, 그리고 정치적 이견으로 인해 사소한 다툼을 벌이고 있던 남쪽과 북쪽 사이의 본격적인 전쟁을 일으킨 사건의 발단은 바로 섬터 요새였습니다. 북부연합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자신들의 구역인 섬터 요새에 북부 연방의 군대가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북부 연방 군대에게 철수를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섬터 요새를 쉽사리 내어주지 않았고, 남부연합 군대는 곧 북부연합을 향해 공격하였습니다. 결국 1863년 7월 1일, 남부연합 군대와 북부연합 군대는 게티즈버그에서 맹렬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희생되고 다쳤으며, 전투는 풍부한 물자와 비교적 유리한 지형을 가지고 있던 북부연합의 승리로 막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북부연합의 대통령이었던 에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희생된 병사들을 국립묘지에 이전하는 행사에 참가하여 연설을 하였는데 바로 이 연설이 바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로 잘 알려진 <게티즈버그 연설>입니다.
2.토마스 에디슨의 전구 발명 – 1879년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땀이다. <토마스 에디슨>
21세기, 우리는 해 질 녘 그리고 해가 저물고 나서까지 밝은 낮과 같이 환하게 생활합니다. 이에 더불어 심지어는 빛을 원하는 만큼 통제하며 지낼 수 있는 것은 <토머스 에디슨>의 “백열전구 발명” 업적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토머스 에디슨은 보스턴의 웨스턴 유니언에서 전신 수로 일하던 평범한 노동자였습니다. 하지만 전기 발명품에 서서히 관심을 가지고, 1869년부터는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최초의 민간연구소로 알려진 멘로파크 연구소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발명에 집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을 쏟은 결과, 1879년 12월 3일 미국 뉴저지주 멘로파크의 연구소에서 탄소 필라멘트를 이용한 백열전구를 40시간 이상 연속해서 빛을 내는 데에 성공하였고 이후 미국을 시작으로 전기의 발전과 각 가정마다 전기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에디슨의 전구 발명은 당시의 한국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전구가 조선에 들어와 경복궁 전체를 환하게 비추어 조선사람들의 활동 시간 또한 획기적으로 늘려주었기 때문입니다.
3.경제대공황 – 1929년
“중개인들은 미친 사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서로 머리채를 휘어잡기도 했다. 거래소의 각종 설비들은 말썽을 일으켰다. 주가 표시기도 작동을 멈췄다. 통화량 폭증으로 전화는 불통이었다. 장을 마치고 두 시간 만에 겨우 작동된 주가 표시기에 나타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시장을 공황으로 내몰았다.” <금융 투기의 역사>
세계 경제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호황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신기술과 신제품의 도입으로 소비문화는 급격히 확산하였고, 이를 증명하는 듯 미국 월스트리트의 주가도 늘어나는 소비와 함께 급격히 상승하였습니다. 하지만 192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실물 경기가 하락하였고, 연이은 주가 상승에 익숙해져 있던 투자자들은 주가가 하락하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주식을 연이어 매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미국 경제의 거품은 무서운 속도로 급격하게 꺼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과 세계의 경제는 말 그대로 “경제 대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대공황 상태는 금융업은 물론이고 농업까지 영향을 미쳐 농산물의 가격은 폭락하였으며, 공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연쇄적으로 파업하였습니다. 결국 미국의 국내 총생산(GDP)는 60% 이상 증발해 버렸으며 대공황 이후 3년간 미국 시가총액 또한 88.88%가 증발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여러 경제 부양책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는 경제 대공황의 이전 상태로 회복되기까지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4.아폴로 11호 달 착륙 – 1969년 7월 16일
지금 착륙선의 사다리 밑단에 서 있다. 착륙선 다리는 어…달 표면에 1인치나 2인치 정도 가라앉아 있지만, 달의 표면은 가까이서 보면 꽤…꽤 입자가 곱다. 거의 가루와 같이 보인다. 지표는, 어…입자가 굉장히 가늘다. <닐 암스트롱>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닐 암스트롱과 그의 동료 마이클 콜린스, 에드윈 버즈 올드린은 세계 인류 최초로 지구 외의 천체, 달에 발을 디뎠습니다. 달에 무사히 착륙한 세 사람은 달의 표면에 기념 판을 설치하고 성조기를 꽂았으며 인간이 달에서 얼마나 잘 움직일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우주에서의 첫 식사는 샌드위치, 땅콩, 말린 과일, 커피, 주스 등으로 지구의 식사와 견주어도 될 만큼 다채로웠으며, 우주에서 생활하는 모습의 일부는 티비로 생중계되어 많은 시민의 기대와 흥미를 만족시켰습니다. 이후 셋은 3일간의 모험을 마치고 지구로 무사히 복귀하였으며, 아폴로 11호 달 착륙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우주기술 발전에 기여한 역사적 사건으로 현재까지도 길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9/11 테러 – 2001년 9월 11일
오늘, 우리는 인간 본성에서 가장 나쁜 악을 보았습니다. <조지 W. 부시>
여느 평화로운 때와 다름없던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오사마 빈 라덴과 무장 단체 조직 알카에다는 미국 상공에 머물고 있던 총 4편의 비행기를 하이재킹하여 맨해튼과 워싱턴 D.C로 기수를 틀었습니다. 이 테러로 맨해튼의 세계 무역 센터와 워싱턴 D.C의 펜타곤은 처참한 모습으로 기습당하고 말았는데요. 당시 맨해튼에서 가장 높이가 가장 높았던 세계 무역센터는 완전 붕괴되었으며, 이로 인해 총 2,996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고, 미국은 이 사건을 발단으로 미국 내 모든 공항의 허술했던 보안/탐색 시스템을 오늘날과 같이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9월 11일이 되면 9/11 희생자를 추모하는 수많은 희생자의 가족들과 시민들은 맨해튼 다운타운의 메모리얼 파크를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