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고립된 일상과 매너리즘으로부터 극복하기 필요한 인생 선배들의 철학적 고찰
미국 전역에서 Stay at Home Order가 시행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꺼지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 불씨로 인하여 Stay at Home 행정 명령은 본래 종료일에서 자꾸만 연장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위와 같은 각 나라의 행정 명령에 따라 ‘자가 격리’되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지기를 바라며 집에서의 ‘감금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집안에서의 ‘감금 생활’이 지속됨에 따라 한때 일상이었던 가까운 베이커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던 일, 다운타운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맛있는 파스타를 먹는 일, 친구들과 몸을 부딪치며 공을 차는 일, 그리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일들조차 더 일상이 아닌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되었다.
더 큰 문제는 끝날지 모르는 이 감금과 고립의 시간이 지속됨에 따라 사람들이 정신적인 고통과 삶에 대한 무기력함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근무하고 있는 Emily Roberts 심리치료사는 “고립은 우리를 생각의 고리 속에 빠지게 만들어 삶과 분위기를 파괴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며 지금의 전국적인 격리와 그로 인한 고립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염려하고 있다.
더불어 코로나로 인해 실직한 수많은 사람과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유학생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거나 실행하지 못하며 삶에 대한 목적과 목표 의식을 점진적으로 잃어가고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와 우리를 집에 가두어 버린 코로나사태,
언제 끝날지조차 모르는 이 고립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하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가 직접적으로 당면한 문제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역사 속에 답이 있다”라고 말했다.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코로나로 인한 고립보다 더 심한 고립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 간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들의 고립 이야기는 참혹하지만, 그 고립을 도구 삼아 새로운 도약을 펼친 그들의 모습은 경이롭다.
이번 기사는 고립의 시간조차 ‘삶의 도구’로 삼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그들의 삶을 통해 고립을 극복할 수 있는 철학적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고립이라는 감금의 시간을 황금의 시간으로 바꾸어 살았던 사람들,
그들은 21세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전 세계적 고립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정신 병원에서도 시대의 역작을 탄생시킨 예술가 고흐의 이야기
# 고립 속에서도 당신은 사랑하는 것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
살다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예술가이자 빛의 색채를 통해 희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사실 놀랍게도 정신 병원에서의 고립을 경험하였다.
자신의 알코올 중독과 자살 충동으로부터 생의 위협을 느낀 고흐는 삶과 예술가적 의지를 다잡기 위해서 스스로 생 레미의 생 폴드 정신병원에 찾아가 고립 생활을 시작하였고 불의의 일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정신 병원에서의 삶을 지속하였다.
병원에 있으면서 정신 발작이 되풀이되기도 하였지만 이 상황에서도 고흐는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일인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병원에 있는 동안 ‘아이리스’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 ‘별이 빛나는 밤’ 등 총 13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고흐는 정신적인 아픔과 고립된 환경 속에서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고흐가 병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 ‘별이 빛나는 밤’
결국, 그가 죽고 난 후 병원에서 그린 고흐의 그림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화가 되었고 그가 예술을 사랑하고 노력한 희생 가치는 많은 사람이 고흐의 예술성을 치켜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고립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고흐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에게 질문한다.
# 코로나로 인한 고립 속에서도 우리는 진정 사랑하는 것을 하며 살고 있는가?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정말 열심히 살지만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는 것은 인색하다.
당장 학업과 생계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사색하기보다 내가 살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사색하는데 우리의 정신을 빼앗아 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일에 대해서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생각과 탐구가 없다면 여전히 당장 것들이라는 주류에 흘러가고 말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이 사랑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기 전에 그림 살, 목사, 교육자 등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했고 결국 붓과 물감조차 스스로 살 수 없어 동생 태오에게 편지로 부탁할 정도로 생계의 압박을 받아 가면서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그림 그리는 일’을 죽는 날까지 실천하였다.
이와 같은 고흐의 삶과 위 질문들을 통해 고립되어있는 이 시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질문하고 탐구하는 시간을 갖아보는 것은 어떨까?
일상의 작은 일조차 내가 사랑하는 평생의 소명으로 발견한다면 고립된 시간 조차 기회와 축복이 될 것이다.
빅터 프랭클, Viktor Frankl(1905-1997)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 격리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던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
# 고립 속에서도 당신은 의미를 찾으며 살고 있습니까?
빅터 프랭클 박사는 1942년 1,500명 되는 사람들과 함께 어딘지 모를 곳으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하게 된다. 며칠 밤낮을 다른 사람들과 부대껴 도착한 그곳은 다름 아닌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였다.
열악하고 인간을 비존엄적으로 취급하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프랭클 박사는 여러 번의 생사의 엇갈림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프랭클 박사는 고비의 순간순간마다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며 최악의 고립 상황을 이겨내었다.
빅터 프랭클 박사가 수감되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모습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_ 빅터 프랭클
프랭클 박사는 죽어가는 포로들에게서 한가지 공통적인 모습을 발견하였는데 수용소로 끌려온 수감자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잊어버리고 삶에 대한 의미를 찾는 노력조차 포기한 모습이었다,
프랭클 박사는 그들의 공통적인 의미 상실의 모습을 고찰하며, 고비의 순간마다 ‘의미’를 찾았고 그 의미를 통해 삶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결국, 3년이라는 수용소에서의 끔찍한 시간이 흐르고 자유를 얻게 된 프랭 박사는 극한의 고립 상황에서도 ‘의미 찾기’를 통해 상황을 견디어낸 것을 토대로 ‘로고 테라피 또는 의미요법’을 창시한다.
극한의 고립 상황에서도 의미 찾기를 멈추지 않았던 빅터 프랭클 박사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도 질문한다.
#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감금 속에 당신은 ‘어떤 의미’를 찾고 있는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_ 죽음의 수용소중에서
비록 집에 감금되어있지만 ‘의미를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프랭클 박사의 말과 같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는 것은 불확실한 삶 가운데서도 목적과 목표 의식을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1899-1951)
전장의 고립에서도 사색을 멈추지 않았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
# 고립 속에서 당신은 생각/사색하며 살고 있습니까?
1999년 21세기를 앞두고 타임스는 20세기 영향을 미쳤던 100인을 선정하였는데 그 중 유일하게 철학자로서 이름을 올린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에 가장 저명한 논리 철학, 수학 철학, 그리고 언어철학자로서 ‘그림 이론’, ‘논리 철학 논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말로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의 연구 분야가 철학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그가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고리타분하게 생각이나 하며 살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계 제1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자원하였고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부대에 소속되었다. 전쟁터에서 그의 용맹함과 지혜로운 행동은 승전보와 전쟁 공로를 세웠고 이에 따라 비트겐슈타인은 여러 훈장중 두 번째로 높은 훈장인 무공훈장을 수여 받기도 하였다.
전우들과 부하들이 모두 인정할 만큼 그의 전투적인 능력과 용맹함은 매우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비트겐슈타인이 치열한 전투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경험한 것들에 사색하고 노트에 글로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 한가운데서 그는 삶과 죽음 그리고 신과 믿음에 대해서 끊임없이 사색하고 글을 써가며 그의 삶을 철학을 정립하였다.
특별하게 이 시기 동안 그의 논리적 사색은 후기 논리 실증주의자들에게 교과서같이 여겨지는 ‘논리 철학 논고’를 완성케 하였다.
비록 비트겐슈타인은 전쟁터라는 고립된 환경 속에 있었지만 사색과 기록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가치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고 끈임없이 사색하고 기록함으로 그가 경험한 보낸 군대 안에서의 감금의 시간을 사색과 생각의 시간으로 활용한 것이다.
# 당신은 코로나의 고립 속에서 사색하며 살고 있는가?
기자가 군생활 중 기록한 사색의 기록들 _ 04.04.2017
사색은 우리가 삶에서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이정표가 된다.
비트겐슈타인과 비슷하게 기자도 군대에 있을 때 매일 22시부터 00시까지 공부 연등을 하며 사색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본인에게도 사색의 시간은 빅터 프랭클이 말했던 ‘삶의 의미’를 찾는데 좋은 양분이 되었고 비트겐슈타인과 같이 개인 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욱 깊이 볼 수 있는 시야를 넓혀주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한 고립의 시간 동안 우리는 어떤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사색하고 있는가?
아무런 생각 없이 집안에서 감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황금의 시간을 낫는 사색을 누리기 바란다.
사도 바울, Apostle Paul (AD5-AD68)
옥중에서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편지했던 사도 바울의 이야기
# 고립 속에서도 당신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기독교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바울은 한때 예수와 예수를 믿는 추종자들을 핍박하는 사람이었지만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나고 회심하여 이후에는 오히려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특히 사도 바울은 자신과 같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교회 공동체를 자신의 형제자매와도 같이 여기며 그들에게 사랑과 권면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었고 그러한 편지들이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바울 서신이 되어 현재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 정경으로 인정된다.
이러한 사도 바울 역시 감옥의 삶이라는 고립을 경험하였다. 그는 자신이 만나고 경험한 예수와 예수의 복음을 전달하는 삶을 살다 복음을 전파한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억울할 수도 있는 옥중에서도 바울은 자신이 그토록 아끼고 진정 형제자매와도 같이 사랑한 교회들에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옥중에서 쓴 4개의 편지(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각 교회에 보내었다.
이 네 편의 옥중서신을 잘 살펴보면 처음과 끝에 항상 자신의 사랑하는 형제(교회)들을 향한 문안 인사와 축복을 보낸 것을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사도 바울은 감옥이라는 고립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안부와 축복을 나눈 것이다.
# 우리는 코로나로 고립된 상황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부와 축복을 나누고 있는가?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많은 사람들은 마치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와 같이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다.
갑작스러운 고립의 시간으로 우리 삶의 강제적인 브레이크가 되었고 이 멈춤의 시기를 통해 우리는 가족부터 친구 그리고 지인들까지 내게 사랑을 주었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와 시간이 생겼다.
고립되어 있는 이 시간 바쁘게 살다보니 잊고 살았던 소중한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도 바울과 같이 안부와 축복의 인사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편지가 아니어도 좋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쉽고 빠르게 연락할 수 있는 여러가지 장비와 매체가 있다.
감옥이라는 고립된 장소와 상황 속에서도 사랑의 안부와 축복을 나눈 바울과 같이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축복을 나눈다면 이 고립의 시기가 오히려 사랑의 관계가 깊어지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에런 랄스턴 – Aron Ralston (1975~)
블루 존 캐니언 바위틈에 127시간 고립되었다가 살아난 애런의 이야기
# 고립의 시간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영화 127시간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에런 2003년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즐기던 등반을 하기 위해 유타주에 위치한 블루 존 캐니언에 찾아간다.
그러나, 애런은 등반 중 갑작스럽게 낙반하여 큰 바위에 자신의 오른손이 끼어버리게 되고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외진 곳이라 그를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그 안에서 갖은 방법들을 생각해내서 손을 빼내 보려고 하지만 실패하게 되고 결국 애런은 127시간 동안 고립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자신의 칼을 이용해 바위에 낀 팔을 자르고 극적으로 생존하게 된다.
애런 랄스턴은 자신의 생존스토리가 알려지게 되면서 고립의 시간 동안 배운 가치들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먼저는 127시간 동안 생각과 추억 속에서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누렸던 일상의 소중함의 가치에 대해서 배웠다고 한다.
지금도 애런 랄스턴은 여전히 산을 타고 수영을 즐긴다.
단 한 가지 바뀐 게 있다면, 고립의 시간을 통해 배운 위의 가치들을 소중히 여기며 산다는 사실이다.
# 우리는 지금 코로나로 인한 고립의 시간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보이지 않지만 때가 되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고립은 끝나게 될 것이다.
이 고립의 시기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 같이 잊고 있었던 가치들을 배울 기회로 삼는다면 코로나 이후 우리의 삶은 더욱 겸손하고 풍성해질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 고립의 시간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지금까지 다섯 명의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서 고립과 감금의 시간을 극복해 황금 시간으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정신 병원에서의 고립 가운데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고립 가운데 의미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고립 속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사색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감옥이라는 고립 속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로 안부를 묻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127시간 동안 바위틈에 고립되었던 애런은 이 고립의 시기를 통해 사람과 일상의 소중함을 배웠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고립된 삶 속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고립의 시간가운데 정신적인 압박감과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독자 스스로가 위 물음표에 가치있는 답으로 채울 수 있기를 응원한다.
고립과 감금의 시간도 황금의 시간으로 만드는 이야기,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