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did you choose NYU?”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이하 NYU)에 다니며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다. 처음에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주저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도 NYU에 오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준비하게 된 해외 대학 입시였다. 그리고 입시에 대한 정보도 턱없이 부족했다. 선배들을 통해 필요로 하다는 시험 이름들만 간간히 들어 보았을 뿐, 그 시험들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또 대학 원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입시 생활 하면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미국의 수능시험 격인 SAT(Scholastic Aptitude Test) 시험 공부다. 당시 나에게 그 시험은 내 가치를 증명해주기라도 할 것만 같은 엄청난 존재처럼 느껴졌다. 2016년에 시험이 개정 되기 전에 빨리 좋은 점수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 심리적 부담감을 더하기도 했다. (이후 개정된 SAT 시험은 내가 공부했던 이전의 시험 방식과는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SAT 시험 성적 발표날, 나는 롯데월드에 학교 현장 체험 학습을 가 있었다. 성적이 잘 나왔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그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바로 점수를 확인했다. 그런데 웬걸. 그 성적표는 한창 즐거웠던 시간을 뒤따르는 암울한 영수증에 가까워 보였다. 내가 봤던 그 어떤 모의고사 점수들 보다도 한참이나 낮은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믿기지 않아 계속 새로 고침 버튼을 눌러 보아도, 그 우울한 점수에는 변함이 없었다. 무척이나 경쾌한 로고송이 흘러나오던 놀이공원 한복판에서 그렇게 암울한 기분인 사람은 그 날 나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두 달 뒤에 다시 SAT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대학 원서를 쓰게 때쯤에는 나에게 있어 그렇게 크게 느껴졌던 그 SAT 시험도 대학 원서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글씨 몇 글자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먼 이야기처럼 여겨졌던 대학 입시가 코 앞에 닥친 현실이 되었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나던 나날이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미국 대학들에도 영국 대학교 지원이 끝난 뒤에 조기전형(early)으로 지원해 보았으나 합격이 아닌 “합격보류 (defer)” 소식만을 받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친 나는 미국 정시 전형(regular)에 대학 몇 군데에 더 지원해 보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 보게 된 대학들 중 가운데에 하나가 바로 NYU였다.
NYU 지원서에는 왜 해당 학교에 지원하느냐는 “Why NYU?”라는 에세이 질문이 있었다. 학교 홈페이지를 이리저리 살펴 보며 전공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긁어 모았지만 글자수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도시 뉴욕에 살고 싶어서 학교에 지원한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그 부분을 읽은 교내 어드바이저 선생님께서는 다른 내용으로 고치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셨지만 나는 그만한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유독 길었던 그 해 겨울 끝에 나는 뜻밖의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내가 더 가고 싶어했던 영국 대학들과 다른 미국 대학에서의 합격 소식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처음에 가장 뜻하지 않았었던 NYU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날까지도 나는 다른 NYU 학생들에 뒤지지 않는 학교에 대한 자부심, “Violet Pride”를 가지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애플의 창립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인생을 여러 점들을 잇는 과정으로 비유한 바 있다. 언뜻 보기에 의미 없어 보이는 인생의 사건들이 훗날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학창시절 한 순간 한 순간도 지금 이 곳까지 나를 이끌어 준 무수히 많은 점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나는 NYU에 왜 오게 되었냐는 질문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뉴욕이 좋아서다. 틀린 말도 아니다. 단지 이 도시에 오기까지의 여정이 조금 더 길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