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 점수, 그리고 시험 대신 크리틱 (Cri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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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074128_1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는 Credit or No Credit 시스템으로 모든 수업이 진행된다. Credit or No Credit 시스템을 쉽게 설명하자면, SAIC 학생의 성적이 점수나 등급으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점수나 등급없이 학생이 학점을 이수하거나 이수하지 못하거나로 나뉘어지는 형태이다. 이것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작품 활동과 자기개발을 위한 것인데, 높은 점수를 받기위해 교수님의 작품 스타일을 따라하거나 억지로 자신의 스타일을 꾸며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SAIC의 전략이다.

Credit or No Credit 시스템을 처음 접하게 되는 입학 희망자들은 대부분 이 시스템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등급 평가가 없이는 수업 태도가 자칫 나태해 지는 것은 아닐지, 졸업 후 대학원 진학 과정과 취업때 혹시나 문제를 이르키지 않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사실상 이러한 걱정들은 할 필요없다. Credit or No Credit 시스템은 말 그대로 학생이 바른 수업 태도와 적극적인 크리틱(critique) 참여, 미술가로써 성장하는 모습이 보여질 때에 학점(Credit)을 이수하고, 그렇지 않으면 No Credit, 즉 학점을 받지 못한다. 이어서 실제로 취업을 할 때 구직자의 학창시절 점수를 물어보는 경우는 없다. 취업 시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개성을 한껏 뽐낸 탄탄한 포트폴리오와 이력서가 아닐까. 또한 미국 내에 유명한 대학원들 대부분은 SAIC처럼 Credit or No Credit 제도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학교들 또한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의 유명세와 독특한 학점 제도를 인정한다. 하지만 만약 불가피하게 수업 점수가 필요하다면 학교 오피스에서 비공식적인 성적 증명 신청서를 받아와 교수님께 제출하여 자신의 점수를 확인하거나 요구하는 곳에 제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 많은 예술 인재들을 배출해온 SAIC가 과연 어떻게 시험도 등급도 없이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은 다름아닌 크리틱(Critique)이다. SAIC에는 시험 대신 정기적으로 크리틱 시간을 갖는다. SAIC에서 크리틱이란 학생들과 교수님이 모두 모여 학생들의 작품을 순서대로 평론하는 것이다. 한 작품에 대한 크리틱은 짧으면 10분, 길면 3시간까지 걸리기 때문에 대다수의 크리틱은 며칠에 걸쳐 진행된다.

크리틱을 위해 정해진 날짜에 모인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을 원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한다. 전시 방법은 작품을 만든 장본인의 선택이다. 어떠한 학생은 벽에 못 따위를 박아 작품을 걸기도 하고, 다른 학생은 정해진 장소로 학생들과 교수님을 이끌고 가서 라이브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학생은 자신의 작품에 자연광이 꼭 필요하기에 적당한 창가를 찾아 작품을 설치하기도 한다. 각자 작품의 특성과 아이디어를 살려 계획된 공간에 설치를 하고나면 비로서 크리틱이 시작된다.

크리틱은 보통 두 단계로 나뉘어 지는데, 첫 단계는 시각적인 평론이고 두번째 단계는 개념적인 평론이다. 시각적인 평론은 말 그대로 작품의 미적인 부분을 함께 질문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시각적인 부분을 평가하고 이해하게 되면 작품의 개념적인 부분 또한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개념적인 평론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행위 작품은 시카고 시청 앞에서 진행되었는데 그 배경이 준비된 동양적인 의상과 묘하게 잘 어우러졌다’ 라는 시각적인 평론으로 시작되어, ‘그렇다면 이 동양적인 의상을 입고 펼쳐진 행위는 시카고 시청과 과연 어떠한 소통을 하는 것이고, 그 의미를 통해 작가가 표현을 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개념적인 평론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작품을 평가받고 함께 작품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토론하며 알아가는 것이 크리틱이다. 예술이란 너무나도 주관적이기 때문에 교수 단 한 사람이 여러 학생들의 작품을 자신의 주관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SAIC의 통일된 신념이다. 주어진 시간동안 반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자신의 작품에 주목하고, 각자 다른 의견을 공유하는 것은 크리틱을 받는 학생과 크리틱을 하는 학생 모두에게나 시험보다 중요한, 너무나도 값진 교육이지 않을까.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예술학교로 알려진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조소를 공부하고 있는 곽지수입니다. 학교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하다가 1년간 북경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고 지금은 SAIC 신입생 프로그램 조교와 KSA 한인회에서 부회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시카고 생활과 특수한 학교 프로그램에 대해 보다 흥미롭고 진솔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