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생, 복원사 인턴 경험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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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을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무작정 구한 인턴십, 값진 교훈 얻어가

바빴던 봄 학기를 마무리 할 무렵, 대학교 졸업까지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뇌리를 스쳤다. 2학년 때만 해도 일단 졸업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에 학업에만 매진했는데 하나둘씩 졸업하는 선배들과 친구들을 보며 그 현실이 나에게도 머지 않아 닥칠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대학 생활이 마냥 신기하고 희망찼던 신입생 시절엔 동기들과 입을 모아 “졸업할 즈음이면 난 이런 것 하겠지” 하며 멋있는 나의 미래를 예상하곤 했는데 웬걸, 내가 벌써 대학교 4학년이 되어버렸다. 그 때까지 귓등으로 듣던 졸업생 선배들의 조언들이 무섭게 떠올랐다. “학교 다닐 때 최대한 인턴 경험 많이 해봐.”, “현장 경험은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하는 것들,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배우게 된다.”

이렇게 정신없이 준비해서 들어간 미술품 복원사 인턴. 오늘로 6주차 되는 날이다.

“복원? 그게 뭐야?” 내가 여름동안 복원사 인턴을 한다고 말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런 질문을 받는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나 또한 복원사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인턴 정보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찾게 된 복원사 인턴 자리. 그 때까진 언젠가 읽은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를 막연히 떠올렸다. 주인공 쥰세이는 피렌체의 명화 복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장르가 로맨스인 만큼 그의 모습이 그토록 낭만적으로 기억에 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나는 남몰래 복원사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에 젖어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환상은 나에게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복원을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칠거야.” 면접을 시작하기에 앞서 사장님이 충고했다. 작업실을 가뜩 메우는 휘황찬란한 예술품들에 속아 이 곳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괜한 환상을 품지 말라 했다. 지난 수십 년간 이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런 환상을 가지고 들어와서 일을 하다가 얼마 되지 않아 도망치듯 그만둔 인턴들이 수두룩 하다고. 이렇게 재미있어 보이는 일을 왜 그 누가 내팽개쳐버리고 도망간다는 말인가. 제대로 된 인턴 한 번 안해본 나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고 대답했고 또 그렇게 믿었다. 그런 순진한 내 모습이 귀여웠는지 사장님은 그 자리에서 나를 합격시켰다.

인턴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나에게는 프로젝트들이 던져졌다. 내가 인턴으로서 첫번째로 참여하게 된 프로젝트는 금박으로 덮인 알렉산더 해밀턴 조각상을 시카고 링컨 파크에 설치하는 일이었다. 비록 내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복원 작업이 완료된 상태였지만 그것을 링컨 파크로 운송하고 설치하는 피날레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얼마 전 까지 공공미술에 도통 관심이 없던 나로선 그 작품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설치 당일 구경을 나온 인파와 지역 신문 기자들을 보며 이것이 이 조그만 동네에는 얼마나 큰 자부심의 상징인지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탄생시킨 예술가의 취지는 아랑곳없이 그 동네 권력자로 인해 220톤짜리 작품의 방향이 이리저리 바뀔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 다른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하나는 토템 폴 복원 작업이다. 세월과 날씨, 그리고 반달리즘으로 인해 손상된 목재 작품을 고치고 칠하는 일이었는데 사진을 보며 본래 모습과 똑같이 칠해야 했고 의외로 섬세한 라인이 많기 때문에 정확한 작업을 위해서 2주 반 동안 단 1분도 앉아서 일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비계 위에서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일반 건물 4층짜리 높이의 아슬아슬한 비계 위에서 작업하는 것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밤마다 그 안에 몰래 들어와 생활하는 노숙자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작품 밑동에는 그의 대변이 있었는데 그것을 치우고 나서도 냄새에 몰려온 벌레들이 작업하는 내내 작품의 갈라진 틈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모든 프로젝트들은 재료와 크기, 역사, 복원 방법 모두 각양각색이었지만 모두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 그리고 체력이 요구되었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매일 출근 후 약 5시간쯤 지났을 때부터 나를 너무나도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미래에 예술가로서 꾸준히 활동을 하고 싶었던 만큼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할 기술들을 습득하고 다른 작가들의 작업을 내 손으로 직접 다루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곧바로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노련한 복원 전문가들과 예술가들 사이에서 작품의 역사와 예술 재료에 대한 상식, 그리고 예술계의 뒷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죽어가던 예술품이 내 손을 통해 다시 빛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끼는 성취감, 고단한 일도 열정만 있다면 내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돈을 번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뻔하지만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교훈이었다.

복원사 인턴 기간은 아직 한 달이 더 남았다. 인턴을 시작하기에 앞서 소박하게 계획했던 ‘이 인턴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들’은 이미 모두 얻었지만 복원사라는 직업 특성상 예상 밖의 사건사고와 그에 따른 배움이 있어 남은 한 달도 기대가 크다. 비록 취직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 경험이 나의 예술 작품 활동에 그리고 나의 미래에도 언젠가 큰 거름이 되어줄 것이란 사실만은 분명하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예술학교로 알려진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조소를 공부하고 있는 곽지수입니다. 학교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하다가 1년간 북경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고 지금은 SAIC 신입생 프로그램 조교와 KSA 한인회에서 부회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시카고 생활과 특수한 학교 프로그램에 대해 보다 흥미롭고 진솔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