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호텔이 모여 있는 지역을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이라 한다.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한 별천지 스트립에 몇 날 며칠 머물면 도파민 과다 상태가 될 수 있다. 다행히 스트립을 조금만 벗어나도 전혀 다른 세상이 나타난다. 지역 예술가와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공간도 있고, 인공의 극치인 라스베이거스와 상극인 텅 빈 사막도 멀지 않다.
주민들의 사랑방 ‘퍼거슨’
스트립에서 택시를 타고 10여분 북상하면 다운타운이 나온다. 과거 카지노와 상업시설이 번성했던 곳인데 1990년대 이후 초대형 리조트가 스트립에 하나둘 들어서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낡은 카지노와 숙박시설은 관광객의 외면을 받았다. 구도심을 살리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아치형 천장에 LED 전구를 수놓은 프리몬트 거리, 수십 개의 컨테이너에 부티크 숍과 식당이 들어선 컨테이너 파크가 대표적이다.
2019년에는 문 닫은 모텔에 예술가가 입점하고 미술품을 전시한 ‘퍼거슨 다운타운’이 문을 열었다. 10월 22일에 퍼거슨을 찾아갔다. 화물차 두 대가 위태하게 엉켜 있는 설치미술이 단박에 시선을 끌었다. 마당에서는 하와이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 축제는 하와이 출신이자 편집숍 ‘토푸 티’를 운영하는 15세 예술가 ‘쿠메이 노르우드’가 주도한 행사였다. 노르우드는 “주말마다 공연이나 축제를 연다”고 말했다. 야자수와 부겐빌레아가 바람에 살랑거리는 마당에서 하와이 음악을 들으니 여기가 라스베이거스가 맞나 어리둥절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뜻밖의 평화로운 오후를 보냈다.
2억 년 전 바위 세상
스트립 서쪽 약 30분 거리에는 ‘레드록 캐니언 국립 보존 지구’가 있다. 자동차로 4시간 이상 거리인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을 갈 여유가 없는 사람이 많이 찾는다. 대도시에서 너무 가까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갔는데 의외로 광활한 사막 풍광을 볼 수 있었다.
분홍색 픽업트럭을 타고 약 4시간 동안 협곡을 둘러보는 투어에 합류했다. 가이드 던은 “보존 지구의 바위산은 약 2억 년 전에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바위 구경은 퍽 흥미로웠다. 울긋불긋 색깔이 화려한 바위가 있는가 하면, 물결이 흐른 것처럼 지층이 선명한 바위도 있다. 전기자전거를 빌려 타거나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별도 잘 보이는지 물었더니 던이 잘라 말했다. “별이요? 대도시에서 100㎞는 떨어져야 빛 공해가 없습니다.” 구글 맵에서 보니 스트립까지 직선거리가 20㎞에 불과했다.
사막에 우뚝 선 바위기둥
무게가 10~25t에 육박하는 화강암 덩어리 33개로 9~10m 높이 기둥을 만들었다. 론디노네는“사람들이 자연과 인간 개입의 역사를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작가의 의도를 떠나 이곳은 사진 명소로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동양인과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 사람이 유난히 많아 보였다. 지난해 방탄소년단 RM도 여길 방문해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