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이 될 뻔한 유학생의 조지아텍(Georgia Tech) 입성기

3672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다소 보수적일수 있지만 본인은 이 말에 강하게 동의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본가는 대전이지만 한 번 사는 인생 큰 물에서 살아야지 싶었다.

힘든 삶을 살아오신 부모님께 자랑이 될 만한 딸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이와 상반되게 ‘수능은 3학년 때 보니까 3학년부터 준비하면 되겠지?’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으로 고등학교 시절 2년을 마냥 즐겁게 보낸 후, 현실에 직면했다. 위로 형제가 없어 굳이 그 중요성을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나름대로 고등학교 3학년 내내 기적을 꿈꾸며 노력했지만 장학금을 노린 지방대 하향지원까지 떨어지면서 나는 길을 잃었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때문에 수능의 범위는 걷잡을 수 없는 바다와 같았고, 정녕 ‘인서울’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비싼 기숙학원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재수를 해서 이름있는 대학에 갈수 있을 거란 확신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찰나에 엄마가 제안한 말. 재수할래? 유학갈래? 그래. 재수생보단 유학생이 듣기에도 낫겠다 싶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한게 말로만 듣던 도피유학이더라. 하지만 내가 인생을 살면서 정말 잘한 행동 중 하나를 그 도피유학이라 하겠다. 미국에 온지 반 년쯤 되었을까? 한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프로그램에 다니던 중이었다. 수능 볼 당시 구멍이었던 영어과목을 시간 재고 풀어 보는데 듣기평가 성우가 영어를 그렇게 또박또박 천천히 구사했었다니, 놀라웠다.

 

그렇게 미국에 오고 나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큰 꿈이 생겼다. 한국에 살면 서울정도는 가야하고, 미국에 왔으면 하버드는 가야지. 사실 구체적인 전공과 대학을 정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내가 원하는 길이 잡혔을 때, 그 대학이 하버드라 할지라도 내 성적이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그렇게 2년제 대학에서 꾸준히 성적을 만들었다. 그러던 도중 정한 목표가 바로 조지아공대의 산업공학.

꼼꼼한 성격에 매사에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던 본인에게 딱 맞는 전공이었다. 운이 좋게도 산업공학으로 1순위 대학인 조지아공대가 집 근처였고, 거기에 더 운이 좋게도 그 당시 다니던 커뮤니티칼리지와 조지아공대가 계약으로 맺은 편입 프로그램이 있어, 그 조건을 맞추면 합격이 보장되었다.

 

그 조건을 맞추는 것이 결코 쉽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고, 그 와중에 부모님은 재정난을 겪으셨다. 생활비라도 벌자 싶어 뛰어 든 곳이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카페겸 빵집이다. 혹시라도 문법은 완벽하지만 스피킹, 리스닝이 늘지 않는 유학생이라면, 미국인이 주 손님인 가게에서 일할 것을 추천한다.

본인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었고, 이 곳에서 3년 반을 일하면서 얻은 것은 결코 돈 뿐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한 문장이 완벽하게 만들어질 때까지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던 나는 사장님이 보는 앞에서 하찮은 영어실력을 숨기기 위해 애써 무슨 말이든 내뱉어야 했다. 단언컨데, 그 이후에 영어에 대한 자부심도 확연히 늘었다. 그렇게 일과 학교를 병행하면서도, 시시한 인생의 큰 점을 찍기위해, 주저하지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geralt / Pixabay

편입 후, 그 큰 점의 효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 결국 해냈다는 그 느낌은 나 자신에 대한 가치와 개념을 크게 바꿔 놓았다. 남들에겐 애써 담담한 척 했지만, 조지아공대의 학생이라는 타이틀은 평생 낮은 자존감에 살아오던 나에게 가슴 벅찬 영광이었다. 내가 이러한 일도 해냈는데 어떤 일인들 못 해내겠어? 라는 거대한 기둥 역할을 했다.

물론 가끔 미국이란 참 무서운 나라라고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이 나라는 내게 기회를 주고, 나의 가치를 돌아보게 해주었다. 이 글을 읽음으로써 무언가 원하던 것을 결국 이루어 냈을 때 그 성취감은 인생을 살게 하는 엄청난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란다. 평생을 비주류에 패배자로 살았던 본인은 24살이 되서야 비로소 나 자신의 가능성을 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내가 나를 믿음으로서 많은 것이 가능해졌다.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하고 2011년 조지아 아틀란타 지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1년 English Language Program, 4년 Community college를 거쳐, 작년 가을에 Georgia Tech으로 편입해 산업공학과와 컴퓨터공학과의 복수전공 과정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