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커학교’ 라고 들어는 봤나? 진정한 배움이 존재하는 학교!

575

나는 중학생 때 미국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유학 생활이 5년차로 접어들던 나는, 미국이란 나라에 충분히 적응되어 있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받아들이는데 5년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더 이상 파란 눈, 금발머리를 가진 외국인에게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짜고 느끼한 미국음식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미국 문화를 충분히 접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줄 알았다. 5년이란 시간은 나에게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을 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 나에게 11학년때 전학을 간 Brooklyn Friends School이라는 Quaker School은 나에게 있어 정말 신선한 충격과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학교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은 이후 나의 생각과 신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으며 나에게 있어서 이 학교에서의 2년은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11학년 때 처음 전학을 가게 되었을 때,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너무 중요한 시기에 전혀 예상치도 못한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내 인생에서 신의 한 수였다.) 대학입시로 고민이 많았던 나는 친구에 대한 기대나 학교에 바라는 것 하나 없이 그저 공부만 할 생각으로 전학을 갔다. 처음 이 학교에 대해 들은 것 중에서 조금 특이하다고 느낀 것은 이 학교가 Quaker School이라는 점이었다. Christian School은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Quaker School은 처음 들어보았다. Quaker가 무엇인지도 몰랐었다. 혹시 나처럼 Quaker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을 위한 짧은 설명을 덧붙이자면, Quaker는 Religious Society of Friends의 멤버들을 칭하는 말이다. 기독교를 베이스로 하지만 Quaker는 이들만의 신념과 이념을 가지고 있다.

대망의 학교 첫 날, 나는 이색적인 학교 분위기에 말 그대로 멘붕이 왔다. 학교를 갔는데 학생들이 선생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아닌가! 미국에서 어른을 부를 때는Mr., Mrs., Ms.라는 명칭과 함께 성을 부르는 것이 예의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친구이름 부르듯이 선생님을 부르는게 아닌가? 교장선생님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이건 마치 내가 교장선생님한테 “철수야”라고 부르는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미국유학 생활만 5년째였지만 이러한 상황은 처음이었던지라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러한 모든 것이 Quakers’ Belief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신분차이 없이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대하고 존중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Brooklyn Friends School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전교생들과 선생님들이 모여서 Quaker Meeting을 가진다. 이 미팅에서는 한시간동안 “Moment of Silence”을 가지는데, 말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시간을 앉아있는 것이다. 이 시간에는, 조용히 자아성찰과 생각을 하는 시간이지만 나누고 싶은 생각과 이야기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신의 돌아가신 가족에 대한 애도의 말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사연을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때 까지는 정말 새로운 경험에 불구했고, 충격은 그 후 부터 시작됐다.

 

2015-2016년쯤, 뉴욕과 미국 곳곳에서 흑인들이 경찰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과도한 진압을 받은 일들이 알려지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이슈가 극에 다 달았었다. 특히,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뉴욕에서는 이에 대한 많은 대모와 폭동이 일었다.

이러한 사건들이 계속 뉴스에 나오고 이슈가 되자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Quaker Meeting 시간에도 나왔다. 한 학생이 일어나더니 인종차별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일어나더니 또 다른 자신의 인종차별 경험을 얘기하였다. 이렇게 1시간짜리 미팅은 3시간이 넘도록 지속이 되었지만 아무 선생님도 학생들의 이야기를 끝마치려고 하지않았다, 대신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같이 공감해주었다. 보통 학교들은 미팅이 길어지면 내용과 상관없이 다음수업을 위해 미팅을 끝는게 대다수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수업만큼이나 이러한 시간과 소통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 날, 나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존중해주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감동을 받음과 동시에 친구들의 인종차별 경험들과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 날 들은 이야기는 정말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나도 인종차별을 겪어보았고 충분히 그 심정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였지만 동양인이 아닌 흑인, 백인으로서 겪는 또 다른 인종차별의 시선은 너무나 차가웠으며 낯설었다. 마치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다른 세상을 처음 접한 기분이었다. 창문너머의 다른 세상을 처음 마주하는 것은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나에게 정말 많은 혼란을 가져다 주었고 내가 보는 세상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 날 이후, 나는 정말 깊은 생각에 빠졌고 그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으며 너무 화가 났다.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 이런 세상에는 더 화가 났다. 이 날을 시작으로, 나의 신념과 이념에는 크나 큰 변화가 있었으며 내가 무지했던 다른 세상에 대해서도 많이 배워갔다. Brooklyn Friends School은 나에게 학업보다 더 큰 가르침을 준 학교였으며 내가 세상을 조금 더 바른 시선으로, 평등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세상을 올바른 시선으로 볼 줄 알게 만들어 주는 이러한 곳이 진정한 “배움”이 있는 학교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