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 1997), ‘반지의 제왕’ 시리즈 (The Lord of the Rings), ‘갱스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 2002), ‘스크림’ 시리즈 (Scream, 1996), 그리고 ‘킬 빌’ 시리즈 (Kill Bill) 등 이 영화들의 제목을 들어봤거나, 혹은 관람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굵직한 할리우드의 영화들은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거장인 하비 웨인스타인의 손을 거쳐서 탄생한 작품들이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시끄러운 논란 속 중심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90년대 초반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영화제작 프로듀서이자 감독인 하비 웨인스타인은 수많은 스타들과 함께 작업했고, 많은 영화의 흥행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선망의 대상이 아닌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그가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던 30년 동안 꾸준히 여성들을 주 타깃으로 하고 행했던 성추행과 성폭행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름이 널리 알려졌더라도 하비 웨인스타인에게 있어서 할리우드의 여자 배우들은 예술가가 아닌 성적 대상이 되었고 그는 영악하게도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서 그의 행동을 침묵으로 유도했다.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펠트로, 레아세이두 등 웨인스타인 성추행 피해자라고 밝힌 여자 배우 중에서는 할리우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배우들도 있다.
이는 즉, 유명인사들도 오랫동안 밝히지 못했던 사실이라면 실상 와인스타인에게 희롱당하고 그에 권위에 대한 두려움에 침묵을 지켜야 했을 무명 배우들이 얼마나 더 많을지 모를 일이란 것이다. 기네스 펠트로의 증언에 의하면, 희롱당했던 당시 남자친구 브래드 피트가 성희롱 사실을 알고 웨인스타인에게 강하게 경고를 했지만, 웨인스타인은 도리어 기네스 펠트로를 해고할 거라고 역으로 협박을 했다고 한다.
과거나 현재나 그는 일관된 비열함을 보여준다. 처음 <뉴욕타임스>에서 웨인스타인의 13건의 성추행과 3건의 성폭행을 폭로했을 때 그는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며 반성하는 중이라던 웨인스타인은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뉴욕타임스>를 은밀히 고소할 준비를 했고, 이 사실은 곧 그의 변호사에 의해 알려져 더더욱 거세진 할리우드의 사람들과 대중들의 분노를 샀다.
신사적인 이미지로 한국에선 ‘왕자님’이라는 별명을 얻은 콜린 퍼스는 25년 전 자신의 동료인 소피딕스가 웨인스타인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자신에게 호소했을 때 위로 이외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그 동 고통받았을 배우들에 대해 진심 어린 유감을 표했다. 또한, 그는 용기 내서 사실을 밝힌 배우들을 존중하며 자신의 입장을 성명서로 밝힘으로써 웨인스타인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콜린 퍼스의 고백으로 과연 할리우드의 여성인권이 웨인스타인 한 사람에 의해서만 훼손됐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모두가 성추행과 성폭행은 잘못 된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30년의 긴 시간 동안 웨인스타인의 행동이 최근에서야 조명이 비친 건 잘못 된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너무도 만연한 일이라 혹은 강자를 따라야 하는 어쩔 수 없다라는 변명이 모여 할리우드 여성 인권을 더욱 퇴보시켰다.
성추행 파문으로 인해 웨인스타인은 자신이 설립한 영화제작사인 웨인스타인 컴퍼니에서 해고되었다. 그의 몰락은 단순히 권선징악의 표본으로 마무리 되어선 안 된다. 또 다른 웨인스타인에게 고통받고 있을 수 있는 불평등한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여성의 인권과 지위 회복에 좀 더 많은 관심이 기울어져야 하며 변화를 일궈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할리우드 속 여자 배우는 할리우드의 꽃, 남성 배우를 돋보이는 보조 역할, 혹은 성적 대상화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주로 주인공을 이루는 영화는 비주류라는 취급을 받으며, 미디어 속 한정적 여자배우들의 캐릭터를 소화해내며, 그리고 같은 노동을 했더라도 개런티를 현저히 남자배우보다 적게 받는, 그런 좁은 입지 속에서 자신들의 커리어를 쌓으려 치열하게 버텨왔다. 모두가 배우로서 동등하게 인정받을 수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할리우드 속 여성 인권의 회복이 할리우드에서만 국한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생활 곳곳에 미디어가 존재하는, 미디어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할리우드의 변화는 곧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도 존재하는 성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더욱 넓혀줄 것으로 생각한다.
여자배우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에 불평등함에 대해 호소하고 있다. 불합리하다는 것도, 잘못됐다는 것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목격자들이 계속 존재한다면 제2의, 제3의 웨인스타인의 횡포는 계속될 것이다. 방관해선 안 된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당사자인 여자배우들의 목소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방관했던 것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암묵적으로 할리우드 속에서 지위가 더 높고 혜택을 받고 있는 남자 배우들 혹은 할리우드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수많은 남자들도 함께 변화에 힘을 실어줄 때 우리는 비로소 할리우드의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할리우드의 변화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더더욱 다양한 주제와 역할들을 포함한 영화를 선사하길 기대해 본다.
이수연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