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캘리포니아의 해안가 샌시메온(San Simeon) 언덕에 허스트 캐슬이라는 유명한 관광명소가 있다.
지금은 이곳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자유롭게 관광을 할 수 있지만 1900년대 초에는 오직 초대받은 사람들만 출입이 가능했었다.
허스트 캐슬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라는 사람이 무려 28년이란 세월에 걸쳐 중세 유럽풍 건축물에 희귀한 예술품들을 접목시켜 완공했다. 총 58개의 침실과 60개의 욕실, 18개의 응접실 그리고 수영장, 테니스코트, 극장 등이 있는 호화 저택이다.
침실 58개·수영장·극장 갖춰
할리우드 배우 사교장소로 유명
허스트 캐슬의 탄생은 이곳 땅을 처음 구입한 아버지 조지 허스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조리 주의 농부였던 조지 허스트는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후 은광을 개발하여 큰 부자가 된다. 그는 정치에도 관여하여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외동 아들인 윌리엄 허스트에게 언론 사업을 맡겨 아들 또한 큰 성공을 하게 된다.
조지 허스트는 현재 허스트 캐슬이 있는 샌시메온에 땅을 구입한 후 패밀리 랜치와 캠핑장소로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아들 윌리엄에게 이곳 샌시메온은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놀이터와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모친과 함께 유럽의 여러 문화유적을 탐방하면서 유럽의 건축과 예술품을 일찍 접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이 윌리엄 허스트로 하여금 샌시메온의 언덕에 자신이 꿈꾸던 멋진 집과 랜치를 건축하게 만든다.
1919년 착공해서 1947년 완성된 허스트 캐슬은 유럽의 건축물들을 모방하여 지었으며 모든 건축 자재들을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의 수도원이나 성에서 사용된 자재 및 예술품들을 그대로 옮겨와 지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예술품을 구입하여 독특하게 자신의 빌라를 만든 재벌로서 게티를 들 수 있는데 동시대의 인물로 허스트와 게티는 유럽의 명품들을 구입하는 경쟁자의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허스트는 건축을 위해 줄리아 모건이라는 여성 건축가를 고용했는데 여성의 지명도가 상당히 낮았던 1900년대 초에 이러한 건축을 여성에게 맡기게 된 것이 상당한 아이러니였다. 윌리엄 허스트는 먼저 3명의 남성 건축가들에게 건축 제안을 했지만 모두 거절당하였다고 한다.
줄리아 모건이 선정된 이유는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당시 도시의 건물 80%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설계한 빌딩은 무너지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즉 허스트 캐슬은 아버지 조지 허스트가 구입한 땅에 아들 윌리엄 허스트의 열정과 자금을 들여 줄리아 모건이 지었다고 할 수 있겠다.
수많은 건물외에도 넓은 목장에 과수원을 조성하고 사설 동물원을 만들어 마치 아프리카 사파리를 온 것처럼 얼룩말, 사슴, 기린 등을 방목했다.
전 세계에 많은 집을 소유한 허스트였지만 이곳 샌 시메온의 허스트 캐슬에서 거주하면서 본인이 소유한 사업체들을 운영하는 사무실로도 이용하였고 정치인과 할리우드 배우들과의 사교장으로도 사용했다. 당시 세간에서는 누가 허스트의 초대를 받았는지가 큰 관심거리였다고 한다. 허스트의 초대를 받은 유명인들로 찰리 채플린, 게리 그랜트, 클라크 케이블, 제임스 스튜어트 같은 배우들과 캘빈 쿨리지, 프랭클린 루스벨트, 윈스턴 처칠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있다.
윌리엄 허스트가 할리우드 배우들과 가까이 지내게 된 이유는 그의 여자친구였던 배우 매리온 데이비스와의 관계도 있다.
윌리엄 허스트는 부인과 5자녀가 있었지만 내연의 관계였던 매리온 데이비스와 허스트 캐슬에서 거주하였고 부인은 자녀들과 동부에서 살았다고 한다.
당시 할리우드 최고 명성의 여배우였던 매리온이 허스트 캐슬의 손님 초대와 영접을 맡았다고 한다.
1930년대 경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도 캐슬을 계속 건축하고 최고의 명소로 만들었던 허스트도 연방 하원의원을 역임하고 대통령 경선에도 참여하는 등 씀씀이가 커지면서 말년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허스트는 1904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다. 많은 면에서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연상하게 하는데 먼저 캠페인 자금을 본인의 자산으로 충당하였고 타인종 특히 멕시코인에 대한 인종적인 편견이 있었다.
또한 본인의 언론사업 확대를 위해 엘로우 저널리즘 혹은 태블로이드 저널리즘으로 알려진 과도하게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소재, 유명인의 스캔들 같은 가십성 보도행태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51년 허스트가 타계한 후 가족들은 이곳을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 기부하는데 1958년에 허스트 샌시메온 사적지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면서 매년 100만 명에 가까운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모든 방문객들은 투어를 통해 고즈넉한 유럽의 예술품들과 허스트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즐거움과 허무함을 생각해보게 된다.
예약제로 시행되는 허스트 캐슬 관광은 자리가 있으면 방문자 센터에서 티켓을 구할 수 있지만 미리 예약을 하는 게 좋다.
허스트 캐슬을 처음 방문하는 경우 본관 1층 투어와 여러 개의 침실과 도서실을 둘러보는 본관 2~3층 투어가 추천되며 바깥 정원과 부엌을 둘러보는 투어 그리고 예술품을 둘러보는 투어 등 다양한 투어 옵션이 있다.
캘리포니아 해안선을 따라 모로 베이에서 북쪽으로 약 30분을 운전하면 캠프리아가 나오고 다시 10분을 북상하면 샌시메온이 나온다.
현재 이곳 샌시메온은 숙박시설들이 모여있는 조그마한 마을인데 허스트 캐슬을 지을 당시 노동자들을 위해 형성된 마을이다. 샌시메온 앞바다에 보면 피어가 설치되어있는데 이곳을 통해 허스트 캐슬에 사용할 자재들을 실어 날랐다.
캐슬의 위치는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허스트에게만큼 샌시메온 언덕은 세상 어느 곳보다 추억과 감성이 서려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캘리포니아 최고의 관광명소로 변한 허스트 캐슬은 한 개인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수많은 사람에게 경이로움과 영감을 주는 귀한 장소가 됐다.
김인호씨
지난 20년간 미주 중앙일보에 산행 및 여행 칼럼을 기고하였으며 유튜브 채널 ‘김인호 여행작가’를 운영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