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이 자유를 향한 갈망마저 가릴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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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이란에서 젊은 여성(마하사 지나 아미니/22)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히잡을 올바르게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속에 걸려 체포됐다가 의문사를 당한 것이다. 이후 이란에서는 대규모의 정부 규탄 시위가 일어났으며 전 세계에 해당 사건이 보도돼 이란 사회에 변화가 일어나는 듯했다. 그 후로 1년이 지났다. 정부의 적절한 조처는커녕 복장 규정을 어기면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한다는 새로운 법안이 제정됐다.

교내의 이란 출신 교수진과 학생, 예술가는 자국에서 행해지는 일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조국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들은 먼 미국 땅에서라도 행동해야 했다. 그렇게 10월과 11월, 새크라멘토 주립대학교(California State University, Sacramento)에서는 이란 여성의 인권 문제를 주제로 전시회가 열렸다.

Fallen Not Forgotten – 얄레흐 나쉬(Jaleh Naasz)

전시장 입구에 놓인 아름다운 드레스가 눈길을 끌었다. 학교 곳곳에 떨어진 낙엽을 옷자락에 붙여 만든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니 현실의 잔혹함이 드러났다. 잎에는 이란에서 히잡 착용을 반대하다 수감 됐거나 목숨을 잃은 여성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전시장 내부에는 이란의 근현대 여성복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20세기 서구 국가에서 유행했던 원피스도 진열되어 있던 것이다. 허리선이 강조되고 무릎이 드러나는 다채로운 색의 원피스였다. 머리카락의 길이와 스타일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다.

팔라비 왕조 시기(왼쪽)와 이란 혁명 이후 현재(오른쪽)의 이란 여성의 옷차림이다.

1925년부터 50여 년간 이란을 통치한 팔라비 왕조 때의 이야기다. 미국과 유럽 패션의 영향을 받아 공공장소에서 히잡과 차도르를 쓰지 않는 게 일상화됐다. 여전히 당시 저소득층 여성들의 상황은 어려웠지만 중상류층 여성들에겐 교육과 사회 진출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 이혼의 허용 사유가 늘어났고, 혼인 나이도 만 18세로 높아졌다. 그러나, 급격한 탈종교화와 근대화 정책을 우려했던 이슬람 세력은 1979년 이란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 이후 세워진 이란 정부는 여성에게 믿는 종교와 상관없이 히잡 착용을 강요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머리 스카프를 착용하고 몸에 달라붙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한다. 손목과 발목을 보이거나 향수를 뿌리는 것도 금지다. 이를 어길 시 벌금형에 처하거나 체포를 당하고 심하면 고문을 받는다. 이뿐 아니라 여성은 사회 진출, 여행 허가, 피임, 이혼에 관하여 꿈도 꾸기 어렵다. 만에 하나 이혼 시 자녀 양육권을 받기 힘들다. 최근 만 10~14세 소녀의 조혼 또한 성행하고 있으며 거부 시 명예살인을 당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민주주의 국가 이란에는 자유와 평등이 자취를 감췄다. 어디로 숨었는가. 여성의 몸을 에워싼 검은 천 아래 숨겨져있다. 인권이 아무렇지 않게 짓밟히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언제까지 문화 상대주의라는 논리가 통할까.

일각에서 히잡은 이슬람 경전을 따르는 것이며 건조하고 무더운 사막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지만, 정작 이란 여성들은 이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법이 자신을 피해가지 않을 것을 알지만 군중 앞에 서서 베일을 벗고 머리카락을 보인다. 현실이 감옥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다.

행동하는 그들만일까. 강압적인 입막음을 여전히 동의의 침묵으로 볼 수 있을까.

새크라멘토 주립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및 언론홍보학을 배우고 있는 김연우입니다. 건국대학교 학생이며 교환학생으로 이곳에서 한 학기를 머물 예정입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이메일로 연락 주세요:) yeonwookim@csus.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