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약 1300원)가 안 되는 돈으로 배를 채워주는 음식.” 최근 미국 대학생 매체 웨스턴프론트는 가격이 저렴한 인스턴트 라면이 대학생들이 즐겨찾는 식단으로 부상했다며 이렇게 전했다. 매체가 대학생 30명에게 물었더니 93%가 “라면을 먹는다”고 답했다. 이 중 33%는 “라면을 한 달에 몇 번씩 먹는다”고 답했다.
식료품 가격 상승에 따른 생활비 위기가 세계인의 밥상이 바꾸고 있다. 웰빙 열풍을 타고 인기를 끌던 유기농 식단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식단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세계인이 늘고 있다.
통조림도 인기를 얻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해산물 통조림 산업 매출이 2018년 23억 달러(약 3조원) 규모였으나 올 11월까지에만 27억 달러(3조5200억원)로 커졌다. 저렴하면서도 보존성이 높은 생선 통조림이 인기를 얻자 뉴욕ㆍ샌프란시스코ㆍ휴스턴의 일부 와인바들에선 통조림이 정식 메뉴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27일 블룸버그통신·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에서 닭 가슴살 907g은 2020년 1월 6.12달러(약 7900원)에서 지난달 8.44달러(약 1만900원)로, 우유는 같은 기간 3.25달러(약 4200원)에서 3.93달러(약 5000원)로 올랐다. 또 치즈버거의 평균 가격은 2019년 9.74달러(약 1만2000원)에서 올해 15.88달러(약 2만원)로 63% 급등했다.
영국에서도 유기농 등 건강식을 즉석ㆍ가공식품으로 대체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BBC 굿푸드의 지난 8월 조사 결과 설문에 응한 영국인 2013명 중 60%가 “식재료 가격 상승으로 식단을 바꿨다”고 답했다. 이 중 16%가 유기농 재료를 줄였으며, 12%가 단백질을 이전보다 덜 섭취한다고 밝혔다.
응답자 19%는 저렴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즉석ㆍ가공식품을 더 많이 먹는다고 했다. 영국 의회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0월부터 올 10월까지 2년간 영국의 식품 가격은 28% 상승했다.
영국처럼 식품 가격 상승률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푸드플레이션(foodflation) 현상이 나타나는 유럽 각국에선 생활비 절감을 위해 끼니를 거르는 풍조도 생겼다. 지난 9월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공개한 유럽 10개국 1만 명 상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8%는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하루 세끼를 챙겨 먹지 못한다고 답했다. 30%는 배가 고파도 식사를 거른 적이 있다고 했다.
물가상승에 외식과 간식 소비도 감소세다. 지난 16일 시장조사업체 닐슨IQ가 공개한 호주인 5000명 대상 조사 결과 응답자의 총 86%가 생활비 절감을 위해 더 저렴한 대체 식품을 사거나 집에서 더 많이 요리하고, 배달·포장 음식을 줄인다고 답했다.
또 60%는 초콜릿ㆍ견과류와 같은 간식을 이제 ‘사치품’으로 생각해 구입을 피한다고 했다. 퀸즐랜드에 사는 케리 무어(67)는 호주ABC뉴스에 “스테이크 대신 소시지를 먹고, 빵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식단이 인스턴트 라면이다. 세계인스턴트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50여 개국에서 소비한 인스턴트 라면은 역대 최다인 1212억 그릇에 달한다. 2018년 1036억2000만 그릇보다 약 17% 증가했다. 이를 두고 닛케이 비즈니스는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이전에 라면을 먹지 않았던 중산층도 라면을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20년 1월부터 올 10월까지 식료품 가격이 25% 오른 미국의 경우 지난해 라면 매출이 전년에 비해 3.4%가량 상승했다. 라면 수요가 늘자 이달 일본 라면업체 닛신식품은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새 생산 공장을 짓고 캘리포니아·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기존 공장 규모를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호주의 라면 수요는 2018년 4억 인분에서 지난해 4억5000만 인분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