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하반기 행사는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독립기념일(7월), 추수감사절(11월), 크리스마스(12월), 공휴일은 아니지만 핼러윈(10월)까지.
조금은 생소할지 모르나 미국의 11월 달력에는 추수감사절을 2주 앞둔 시점에 또 하나의 공휴일이 있다. 이달 11일은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로서 미군에 종사한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날이다. 베테랑(veteran)은 퇴역 군인 또는 전문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5월의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와 차이가 있다면, 메모리얼 데이는 전쟁에서 희생당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정전협정의 날로 기념돼 왔던 이날은 점차 의미가 확대됐고 명칭도 현재의 것으로 바뀌었다. 재향 군인뿐 아니라 이제는 참전 여부를 떠나 미군에서 복무한 모든 사람을 위한 날로 지정되었다.
국적은 달라도 한 나라를 위해 복무한 군인들의 정신을 기리고자 한다면, 이날 미국 곳곳에서 열리는 재향군인의 날 행사에 참여해보자. 뉴욕에서 열리는 퍼레이드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지만, 새크라멘토 주민이라면 비교적 가까운 주청사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재향군인의 날에는 주청사 앞에서 열리는 기념행사에 참여하고, 5월 메모리얼 데이에는 주청사 공원에 들르자. 공원에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 추모 공간(The California Vietnam Veterans Memorial)이 작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1959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 전쟁에서 희생당한 캘리포니아 출신 군인들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벽에 빼곡히 새겨진 5,673명의 이름을 들여다보니,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양국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수많은 연합군의 생명을 앗아간 길고도 긴 전쟁이었다. 이날 공원에 산책을 나온 지역 주민들은 발걸음을 멈춰 서서 피 흘린 자국 병사들의 이름을 가슴에 새겼다.
우리나라도 국군의 날과 재향군인의 날이 있지만, 그날의 의미를 새기는 이는 많지 않다. 추모 공간의 수와 이를 찾는 발걸음도 미국에 비해 현저히 적다.
미국의 병역제도는 모병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징병제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것이 군인을 향한 존경심과 감사의 정도를 결정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에 복무한 모든 청춘의 수고와 희생정신을 더욱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