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든 사람들은 자신이 뽑은 국가 최고 권력의 생활을 궁금해한다. 내가 뽑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한국의 경우 지난 수십 년간 역대 대통령들은 일반 시민들에게 대통령을 만나는 문턱을 낮추는 시도를 많이 하였다. 이 궁금증을 해결해 줄 드라마가 있다. 비록 그 드라마의 배경이 대한민국은 아니고 미국의 백악관이지만 말이다.
1999년 시작되어 2006년에 일곱 번째 시즌을 끝으로 막을 내린 웨스트 윙(West Wing)은 미국의 정치 현실과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실명’을 그대로 쓰고 있으며 미국 내에 아직 잔존하고 있는 인종 갈등과 미국은 세계 경찰이라는 인식도 그대로 담겨있다. 웨스트 윙은 백악관 내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건물을 말한다. 2020년 여름, 미국에 유례없던 사회적, 인종적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자 종영된 지 15년이 되어가는 이 드라마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웨스트 윙을 보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인물들의 직책과 인물들의 말 한마디, 상황 하나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스토리 전개이다. 사회의 민감한 이슈와 정책을 다루는 자리이다 보니 사법부와 국회의 고위 관료들은 물론이고 각 계의 로비스트와 시민단체까지 등장해 당면한 문제들을 풀기 쉽게 하기도 하고 더욱 심각한 상황까지 만들어 내기도 한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나 정치적 의사 결정 및 형성 과정을 보면서 언론에 나타난 사실들 뒤에 더 험난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보인다.
웨스트 윙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두 개의 국가까지 만들어서 미국의 국제적, 외교적 역할을 보여준다. 또, 국정 운영의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보여주고 대통령의 재선 과정, 대선 캠페인 과정을 세세하게 정밀하게 표현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웨스트 윙 만큼 잘 짜이고 통쾌한 정치 드라마가 아직 없다. ‘프레지던트’, ‘대물’, ‘보좌관’ 등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등장하지만 이런 드라마는 가상의 정당과 지역들을 묘사하고 정치인들과 국회의원들의 나쁜 면모만 부각할 뿐이다.
우리나라보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이 더 많은 미국, 게다가 인종 문제까지 겹친 나라가 이것을 해냈다. 공화당 부시 행정부 시절 극 중에서 민주당 정부 12년을 만들어냈다. 드라마 자체가 풍자물인데도 불구하고 7년을 버텼다. 그리고 이 정치 콘텐츠는 미국 대선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이 극도로 양극화된 미국의 현 상황에 꼭 필요한 드라마이다. 극 중 캐릭터들과 그들이 속해 있는 정당은 정체성이 분명하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 즉 다문화를 포용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나라. 그러나 지금, 미국은 그 정체성을 상실한 채 바다에 떠 있다.
웨스트 윙은 정치 드라마지만 정치를 초월한 정치 드라마이다. 이러한 정치 드라마는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아직도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져준다. 몇 주전 백악관 앞에서 인종 차별 반대 시위를 하던 몇몇 사람들이 백악관 담장을 넘어가자 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의 모든 불을 다 끄고 지하 벙커로 간 뒤 어둠에 뒤덮인 백악관 사진이 공개되었다. COVID-19라는 최악의 전염병도 막지도 못한 채 컨트롤 타워인 백악관은 1960년대 인권 운동 이후 최악의 인종 갈등 앞에서도 숨어버렸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2020년은 벌써 절반이 흘러버렸으며 또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