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끝에 있는 보물을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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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LA서 박사학위 받은 ‘지선아 사랑해’의 주인공 이지선씨

지난 10일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지선씨가 박사 가운을 입고 가족들과 기념 촬영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모친 심정(지선씨 왼쪽)씨와 부친 이병천(지선씨 오른쪽)씨, 그리고 조카들이 함께했다.
지난 10일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지선씨가 박사 가운을 입고 가족들과 기념 촬영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모친 심정(지선씨 왼쪽)씨와 부친 이병천(지선씨 오른쪽)씨, 그리고 조카들이 함께했다.

“장애인 제대로 돕자 공부 결심”
유학생활 11년 만에 학위 취득

도움 필요한 곳서 일하고 싶어
동화책 등 저술 활동도 병행

“삶은 고비마다 의미가 있고, 고난의 끝에는 생각지도 못한 보물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03년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던 이지선(38)씨가 지난 10일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씨는 이화여대 재학중이던 지난 2000년 7월 음주 운전자 뺑소니 사고를 당해 전신에 중화상을 입고 40번이 넘는 수술과 재활 치료를 받았다. 책은 자신의 치료와 재활 과정을 담았다.

이씨는 16년 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났을 때 ‘장애인을 돕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손을 내밀려면 복지전문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5년 다시 시작했던 공부가 11년 만에 끝이 났다. 이제 오랜 시간 품었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온 거다.

학업은 쉽지 않았다. 시행착오로 먼 길을 돌아오기도 했다. 2005년 보스턴대학 재활심리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지만 원했던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졸업을 앞두고선 고민 끝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제대로 다시 해보자’라고 마음 먹었다. 이후 2008년 컬럼비아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다시 석사를 마치고 2010년 UCLA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지선 씨는 갑자기 닥쳐왔던 고난을 ‘선물’이란 말로 대신한다. “사고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도 자주했다. 지선 씨는 “직접 고통의 시간을 보낸 뒤, 세상에는 아프고 힘들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에게 내 손을 내밀고 싶다. 이게 내가 사는 이유”라며 활짝 웃었다.

‘박사 이지선’으로 또 다른 기적을 준비하고 있는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박사 학위를 받은 소감은.

“기쁘긴한데 부담도 크다. 이제는 사회에 나가서 뭔가 해야할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제대로 해 낼 수 있을지 많이 떨린다.”

-박사 논문은 어떤 내용인가.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를 연구했다. 어떻게 하면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바뀔 수 있는지 연구한 거다.”

-장애인을 확실히 돕고 싶어 박사 공부를 했다고 들었다. 방법을 찾았나.

“성과는 있었다. 연구를 통해 장애인들과의 친밀도를 높이는 프로그램 개발 방법 등을 알게 됐다. 최대한 어울리고 함께 생활하는 기회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단 결론을 얻었다. 여러 장애인 복지단체에 캠프 등 특별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싶다.”

-공부가 적성에 맞았나.

“어려웠다. 박사 과정 1년차 때 영어 실력은 부족한데다 방대한 양의 공부를 소화해 내기가 버거웠다. 늘 꼴찌였던 것 같다. 화장실에서 울기도 하고 힘든 시기를 겪었다.”

-어떻게 극복했나.

“2011년 5월, 사소한 실수로 과제를 늦게 제출해 시험 볼 자격을 얻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화도 나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오기를 부렸다. 책 출간 이후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 강연을 모두 취소하고 오로지 공부에만 몰입했다. 이를 악물고 넉 달 동안 매달렸더니 다시 도전한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교수들도 깜짝 놀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모범생 선배’로 소개되기도했다. 꼴찌의 역전이었던 셈이다. 정말 기쁜 날이었다. 이후 자신감이 생겼다.”

-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

“먼저,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을 쓸 거다. 장애인은 조금 다른 사람일 뿐 틀린 사람이 아니란 걸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얘기하고 싶어서다. 내 얘기를 조카가 소개하는 방식으로 서술할 생각이다. 또 학생으로 살았던 미국 생활에서 느낀 점들을 에세이로 정리해 새 책도 낼 생각이다.”

-박사로서의 활동도 기대된다.

“아직 뚜렷한 계획은 정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복지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한 만큼 연구나 강연도 하고 싶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뭐든 찾아 할 생각이다.”

-또 다른 시작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많은 분들이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듣고 ‘덕분에 삶이 변화됐다’며 고마워하신다.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처음 마음 먹었던 것처럼 변함없이 누군가의 손을 늘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터뷰 마지막에 ‘여전히 사고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선 씨는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느냐”고 되물으면서도 “지나 온 삶은 저마다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고난의 끝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이 있다. 보물을 꼭 찾길 바란다”며 희망을 얘기했다.

글·사진=오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