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국 드라마를 보며 흔히 생각하는 넓고 북적북적한 다른 미국 대학교들과는 달리, 필자가 재학 중인 얼햄대학교는 전교 학생 수가 1000명조차 되지 않는 작은 대학교이다. 미국 인디애나주 리치몬드에 위치하고 있는 얼햄 칼리지는, 학교 셔틀을 타고 나가야 월마트를 갈 수 있고, 주변의 신시내티나 인디애나폴리스 같은 대도시를 가려면 끝없는 옥수수밭을 1시간 반에서 두시간 정도 빠져나가야 한다.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30분도 안 돼서 학교 캠퍼스를 다 돌아봤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다. 1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는 모든 건물의 이름과 그 건물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수업을 다 꿰뚫게 되었고, 1달이 지나자 학교 캠퍼스의 다람쥐와 학교 밖 캠퍼스의 다람쥐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캠퍼스 안의 다람쥐들은 학생들이 쿠키 같은 디저트를 많이 먹여줘서 꽤 크다. 사실 처음에는 다람쥐 일 거라는 생각도 못 했다.) 한 학기가 지나자 캠퍼스 안의 대부분의 학생들과 운영진들의 얼굴이 익숙해졌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이렇게 작은 대학교 캠퍼스에서는 얼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우선, 얼햄의 종교관에 따라, 우리는 교수님을 Professor Johnson이라고 부르는 대신, First name으로 부른다. 퀘이커교(Quakers)에서 강조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가치에 따라, 우리는 교수님들을 포함한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운영진을 First name으로 부른다. 이러한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필자는 이메일을 보낼 때 Ms. Johnson이라고 보냈다가, 앞으로는 First name으로 불러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문화 덕분에, 얼햄 학생들은 교수님들, 그리고 학교 운영진들에게 거리감 없이 다가갈 수 있다. 얼햄에서의 교수님은 우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는 데 도움을 주고, 같이 대화를 나누며, 교실 밖에서는 친구들과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선생님이자, 친구이다. 이러한 문화 덕분에 우리는, 교수님들이 시니어들과 함께 바에 가서 술을 마시며 사교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학기 중간이 아닌 졸업식 며칠 전, 그리고 법적으로 나이가 되는 시니어들만 해당된다.)
얼햄의 또 다른 특징은 수업 규모가 매우 작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번 두 학기 동안 들은 수업들을 보았을 때, 수업 규모가 가장 큰 수업은 Calculus A였고, 30명의 학생들과 함께했었다. 대부분의 선배들도 지금까지 들었던 수업 중 가장 학생 수가 많았던 수업의 학생들은 대부분 50명 내외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수업이 10-15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교수님들은 누가 자신의 수업을 듣는지 알뿐더러, 학생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꾸준히 소통한다.
이와 관련해서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자면, 이번 학기에 듣는 토론 수업 교수님은 우리에게 일대일 면담을 요청하였고, 필자는 아직 영어로 나의 의견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고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교수님은 혹시 아이스크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서, 너 스스로에게 도전적인 수업을 듣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격려하며, 이 수업이 끝나면 꼭 리치먼드에 있는 최고의 아이스크림 집 (Ullery’s homemade ice cream)에 가서 교수님이 가장 좋아하는 rocky road를 포함한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반대로 교수님의 학생을 향한 무한한 관심으로 인하여 필자가 당황했던 적도 있다. 1학년 1학기 가을 방학을 앞두고 얼른 쉬고 싶다는 생각에 수업을 빼먹고, 당연히 교수님은 눈치를 못 채거나 그냥 지나갈 것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가을 방학이 지난 뒤,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저번 수업에 네가 안 왔는데 어디 아팠니? 이제는 몸이 괜찮니? 라고 물어보셨다. 내가 이유 없이 수업을 빼먹을거라는 생각 조차를 하지 않는 교수님의 학생을 향한 끝없는 신뢰로 인해 그날 이후 자체 공강이라는 개념은 필자의 머릿속에서 삭제되었다.
마지막으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얼햄은 국제 학생 비율이 20%라는 점이다. 이 점은 필자가 얼햄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이자, 가장 기대했던 점이기도 하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환영하는 얼햄의 특성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얼햄에서 오래 지낸 교수님들이나 3, 4학년들은 개개인의 문화를 존중하고, 관심을 갖는다. 또한, 국제 학생들이 많은 만큼, 유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정말 잘 마련되어 있다.
우리의 학업관련 상담을 해주는 Academic Adviser 뿐만 아니라 국제 학생들은 International Adviser가 따로 있어, 얼햄과 미국 생활에 전반적으로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비자, 세금 문제, OTP 등 우리가 미국에서 직면하는 어려움과 고민들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또한, 여름 방학을 제외한 모든 방학 동안 기숙사에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으며, 봄방학과 가을 방학에는 근처 국제 식료품점이나 볼링, 농구 경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에 데려다준다. 필자와 같이 유학 생활이 처음이거나 아직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정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필자는 얼햄 대학교에 오기 전까지, 과연 얼햄이 나에게 맞는 선택인가 고민했다.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한국에서 잘 알려진 주립대에 진학하는 것이 정말 부러웠고, 내가 얼햄 대학교에 간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종종 2년제 대학교로 도피 유학을 간다는 오해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그들의 문화를 배워가고, 교양 과목의 폭넓은 경험과 사고력 향상을 중요시하는 교육 방침에 따른 토론을 기반으로 하는 수업을 들으면서, 앞으로의 3년동안 필자가 어떻게 성장해갈지 너무나도 기대가 되고, 공부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얼햄 대학교를 포함한 리버럴 아츠 칼리지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