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 신청은 언제나 어렵다. 한 학기에 몇 학점을 들을지, 또는 본인이 추구하는 스케줄은 어떤 것인지와 같은 수 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제외하고도 교양 또는 전공 수업 중에서도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할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전 기사에서 이야기했듯,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교 한인학부학생회 (KUSA)에서 진행하는 “코스 시그널”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올해 “코스 시그널”을 놓친 이들을 위해 이번 기사가 있다. 오늘은 미술부터 정치학까지 매디슨 한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수업 다섯 가지와 담당 교수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여유로운 금요일 오후에 클래식을
영어에 “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에는 정당한 대가가 있다는 뜻이며, 대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만큼 학점이 잘 나오는 인과관계에 적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discount lunch” 격의, 다른 수업에 비해 부담 적고 수월하게 들을 수 있는 수업이 있다면 어떨까? 이 수업은 점심시간 직후에 참석해서 음악 감상만 제대로 몰입해서 한다면 정직하게 점수가 나온다. 바로 첫 번째로 소개할 Music 113, Music in
Performance이다.
이 수업은 이름과 정말 똑같다. 일주일에 한 번 큰 강당에 모여, 50분 동안 여러 종류의 음악 연주를 듣는 수업이다. 연주되는 음악의 종류는 클래식부터 재즈, 심지어 한인 사물놀이 동아리인 ULSSU (얼쑤)의 공연까지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시간대도 Spring 2022 기준 매주 월요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 오후 1:20에 있기에 일주일 중 하루를 편하게 음악 감상하며 보낼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만 들으면 정말 마음 놓고 들을 수 있는 수업이겠지만, 앞서 서술했듯이 이 수업은 “discount lunch”의 개념이기에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출석은 Top Hat이라는 앱을 통해 기록되기 때문에 무단결석은 절대 엄금이다. 한 번이라도 걸린다면 바로 F를 받기 때문이다. 또, 수업 시작 전 그날의 공연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여러 부가설명이 있다. 이런 내용에 각별히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공연이 끝난 후에 있는 퀴즈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네 문제짜리 퀴즈 일지라도, 출석과 함께 성적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만큼 모두 맞추는 것을 추천한다. 이런 두 가지 주의점만 잘 염두에 둔다면, “clap for credit”이라 불리는 Music 113은 1학점짜리 수업 중에서는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수업임이 틀림없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피카소를 찾아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은 많다. 본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든, 직접 그리거나 만드는 것을 좋아하든, 심지어는 빈지노의 명곡 Dali, Van, Picasso를 들어보았기 때문이든.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그런 관심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기 마련이다. 본인이 어떤 미술을 좋아하는지 탐색해보아야 하고, 그런 관심사를 실현하기 위한 준비물이나 방식에 대한 정보 등 여러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부담 없이 미술을 배우거나 즐기고, 심지어 노력만 한다면 학점까지 잘 챙기는 일석이조를 이루는 수업이 있다. 바로 주저하는 미술가들을 위한 두 번째 추천 수업, Art 100: Introduction to Art이다.
Art 100 (한인들 사이에서는 “아트백”이라 불린다)은 미술 전공이 아니더라도 편하게 듣기 좋은 교양 수업이다. 그런 첫 번째 이유는 스케치, 수채화, 조각, 그리고 영상 미술 등 여러가지 장르를 포함하는 커리큘럼이 레스토랑의 메뉴 샘플러처럼 잘 짜여 있기 때문이다. 커리큘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물이 필요한데,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어떤 제품을 구매할지 고민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테잇에 위치한 Artist & Craftsman Supply Madison에 Art 100 맞춤으로 준비된 미술용품 세트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자. 가격도 $20 정도로 비교적 저렴하다. 이 수업에서는 작품을 그리거나 만드는 데에 필요한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특정 작가나 기술에 대한 간단한 역사, 그리고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미술을 관람하고 평가하는 연습까지 한다. 이런 모든 활동이 과제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매주 미술 활동, 글이나 영상 관람 후 소감문, 토론, 그리고 에세이 등의 과제가 있는데, 이때 온라인은 오프라인과는 다르게 모든 것을 본인 스케줄대로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을 추천한다. Art 100은 과제가 밀리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정직하게 노력을 한다면, 미술에 대한 입문과 학점까지 챙길 수 있는 최고의 교양 수업이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는 것들
미국은 낯선 나라다. 미국으로 유학을 처음 가보는 사람은 물론이고, 유학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영어와 같은 언어는 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지만, 문화나 사회적인 분위기 등은 엄밀히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배우는 수밖에 없다. 미국인 친구들이나 TA, 또는 교수님들과의 대화부터 미국 언론에서 다루는 여러 이슈까지 이해할 수 있으려면 미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꼼꼼하게 가르쳐주는 수업은 바로 세 번째로 소개할 추천 수업, SOC 125: American Society: How it Really Works이다.
이 수업의 목표는 미국 사회는 어떤 사회이며, 어떻게 돌아가며, 어떤 변화가 필요하고, 그리고 그런 변화는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한 마디로 수업 제목처럼 어떻게, 즉 “how”에 초점이 맞춰진 수업이다. 그 과정에 있어 자유, 번영, 효율, 공정성, 효율성, 그리고 민주주의까지 미국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다섯 가지 가치관을 필터 삼아 미국의 경제, 환경, 그리고 정치 등의 주제를 하나씩 파헤친다. 교재는 수업 이름과 같은 American Society: How it Really Works이며, Fall 2021 기준으로 저자 중 한 명인 Joel Rogers 교수님께서 강의하신다. 교재에도 대단한 일화가 있는데,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썼던 교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본인이 직접 교재를 집필하셨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 Michael Sandel 교수님의 Justice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의 철학 강의에서 탄생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로 사회학에 열정 있으신 교수님께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 이 수업을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SOC 125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빈틈없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Rogers 교수님께서는 미국에 대한 공공연한 정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너무 쉽게 보고 넘어갔을 수도 있는 정보를 역사, 문화, 그리고 통계와 같은 필터를 통해 꼼꼼하고 빈틈없이 이야기해 주신다.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이 흥미로울지라도 마냥 쉬운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수강에 관심이 있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런데도 수강 후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전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에 이 수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유머는 타고나는 것이라지만 배울 수도 있다
유머러스하다는 말은 누구나 들으면 기분 좋은 말이다. 자신의 말이나 말하는 방식이 재밌다는 뜻이며,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해주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머는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도 있지만, 환경에 의해 길러질 수도 있기에 원천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듯 유전자 로또는 이겼어도 유머 로또는 떨어졌을 이들에게 유일한 구원자는 코미디를 통한 학습이다. 전통 셰익스피어 코미디부터 현대 코미디 영화까지 유머의 요소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 소개할 추천 수업, CA 300: Film Comedy가 바로 그런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수업을 추천하는 이유는 세 번째로 소개했던 SOC 125를 추천한 이유와 비슷하다. 사람을 웃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이며, 우리가 그런 요소를 왜 웃긴다고 느끼는지 배우기에 유머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거나 본인의 유머 감각을 키우고 싶은 학생들에게 추천한다. 또,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웃긴다고 느끼는 부분을 단순히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심도 있게 관찰하고 공부하기 때문이다. 코미디와 유머는 의외로 유래, 역사, 그리고 이론에 있어 다룰 것이 많다. 이때 Ben Singer 교수님의 열정과 전문성이 빛을 발한다. Singer 교수님의 가장 큰 장점은 전문적인 지식도 지식이지만, 바로 전문성이다. 한 마디로 코미디에 등장하는 사회적으로 터부시되거나 민감한 주제도 부끄러움 없는 학술적인 어조로 잘 다룬다는 점이다. 이런 내용에 대한 안내문이 syllabus에 등장하는 만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수강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래도 코미디와 유머의 궁극적인 목표는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기에 아주 재밌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코미디를 배우며 가장 흥미롭고 학습에 도움되는 점은 예시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영화나 미국 드라마와 같은 매체에서 선정되는 예시들은 수업 때 배우는 내용을 제대로 각인시켜준다. 정말 백문이 불여일견인 셈이다. 이런 예시는 강의 PPT 속 짧은 클립으로도 존재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이 진행되는 상영관에 모여서 코미디 영화를 보는 film screening의 형태로도 존재한다. CA 300 수강생들의 특권으로, 지루한 일상 속 소소한 행복임이 틀림 없다.
처세술의 끝장을 보고 싶다면
처세술이란 세상을 살아가며 여러 상황을 능동적으로 헤쳐나가는 기술을 뜻한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처세술 하면 삼국지나 수호지와 같은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서양에서는 스페인의 발타자르 그라시안 (Baltasar Gracián)이나 독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 (Otto von Bismarck)와 같은 인물들의 글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을 이 둘보다도 더 일찍이 깨우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피렌체 (Florence)의 정치철학자이자 외교관이었던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이다. 마지막 추천 수업은 피렌체와 현대 사회를 마키아벨리의 저서와 연극, 그리고 그가 살았던 피렌체와 이탈리아 반도의 역사를 통해 바라보는 PS 365: Machiavelli and His World이다.
마키아벨리의 가장 뛰어나고 대중적인 업적은 당연히 군주론 (The Prince)이다. 제목만으로도 어렵게 느껴지지만, Kristin Phillips-Court 교수님께서는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그가 살았던 르네상스 피렌체의 상황과 같은 역사에 근본을 두고 군주론 (The Prince), 로마사 논고 (Discourses on Livy), 그리고 그의 유일한 연극인 만드라골라 (The Mandrake)를 쉽게 이해되도록 가르치신다. 고로 이 수업은 역사를 기반으로 각 책이나 연극의 탄생 배경부터 짚고 넘어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단적인 예로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유배 생활을 할 때 쓰였는데, 당시 집권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 (Lorenzo de Medici)의 인정을 다시 받기 위해 보냈던 책이다. 이러한 배경 없이는 군주론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Phillips-Court 교수님의 지식은 또 마키아벨리의 글을 해석할 때 드러난다. 각 장에 쓰인 내용은 물론, 특정 표현이나 단어 선택의 중요성, 심지어는 문장의 물리적 배치까지 파헤치며 굉장히 심도 있는 수준으로 설명해주시니 빈틈없는 해석이 대단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Phillips-Court 교수님께서는 학생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매우 크시다. 강의하시거나 discussion을 진행하실 때 항상 질문을 친절하게 받아주시고, 정말 정성껏 대답해주신다. Office hour 때도 굳이 수업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