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괜찮아졌다고 방심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섭씨 34도까지 올라갔던 7월의 어느 뜨거운 날에 Long Island의 Port Jefferson에서 파스타 가게를 운영하는 Emily Jansen(43세)씨가 한 말이다.
봄이 가고 여름의 한복판이다. 계절은 순리대로 흐르지만, 그 누구도 올해 여름에 선글라스와 함께 마스크가 필수품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Jansen씨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마스크를 쓰는 게 답답하면서도 모두를 위해 조금만 참으면 조금 더 빨리 상황이 나아지지 않겠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두 달 전보다는 괜찮아졌다. 그전에는 뉴욕의 다른 식당들과 마찬가지로 테이크 아웃과 픽업만 가능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식당 안에서 먹을 수 있다.”
모든 게 헝클어졌고 모든 게 망가졌다. 2020년의 절반이 흘렀지만, 세계는 여전히 20세기 스페인 독감 이후로 최악의 전염병인 COVID-19(우한 폐렴/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필자가 College Inside에 게재했던 “미국 유학생들이 바라보는 COVID-19″ 기사에서는 2월과 3월 초 아직 미국보다 한국에 확진자가 더 많을 때의 유학생들이 가졌던 한국에 대한 걱정을, 그리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판데믹에 지역사회 마비” 기사에서는 본격적으로 전염병에 맞서는 뉴욕주 정부 대책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에 대해 다루었다면 이번 기사에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어떻게 적응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 최다 확진자 및 사망자의 나라이다.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7월 20일 기준 380만 명 확진, 14만여 명 사망으로 공식 집계됐다. 뉴욕은 40만 명 확진, 32,000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주 내 공공시설과 식당 리오픈을 선언한 플로리다와 텍사스는 경제 재개 선언과 동시에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유독 미국에서만 확산 속도가 빠른 것일까. 바로 바이러스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의 차이이다. 일찌감치 중국의 피해 규모를 접하고 유럽이나 미국보다 확진자가 빨리 나온 한국에서는 길거리에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무엇보다 지방, 중앙 정부 할 것 없이 질병대책본부를 필두로 전 국민 마스크 쓰기를 권장했다. 반면 미국은 당장 백악관에서부터 마스크 실효성 논쟁이 벌어졌으며 대통령인 Donald J. Trump조차도 6개월 동안 마스크를 쓴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물론 마스크 하나만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절대적 해결책이 되지는 않지만 1차 방역에 효과적인 것은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에 연일 중국 때리기에만 열중인 Trump 대통령이 정작 마스크를 쓰지 않자 연방정부는 컨트롤타워로서의 기능을 잃었으며 오히려 Andrew Cuomo 뉴욕 주지사처럼 주 정부에서 나서서 위급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인식의 차이는 지역 곳곳에서 드러난다. 여전히 좁은 클럽에서 파티를 벌이는 미국 젊은이는 말할 것도 없으며, 마스크나 안면 보호기구가 필수인 대형 식료품 매장이나 마트를 제외하면 길거리나 공원에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선글라스만 낀 채 거리를 활보한다.
사람들과 2m 이상 떨어졌다고 안심하는 미국 사람들. 여름이 다가오고 햇빛이 강렬해지자 사람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Long Island의 Huntington에서 만난 한 중년 남성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난 마스크는 항상 가지고 다닌다. 공원에서처럼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잠깐 벗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오늘 날씨를 봐라. 올 여름들어 가장 더운 날씨다.” George Kemerick(50세)은 공원보다는 길거리에 마스크 없이 다니는 사람들이 문제라면서도, 마스크 착용이 강제적으로 집행되지 않는 이상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 모습을 보는 건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개인의 자유는 중요하다. 민주 사회에서 강제적인 마스크 착용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른 슬기로운 방법이 있길 바란다.”
하지만 자유에 늘 책임이 따른다는 건 표현의 자유 제한 문제에서도 늘 등장하는 말이다. 어디까지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가는 늘 논란과 토론의 대상이었고 특히 이번 판데믹과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겪으면서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수정헌법 제1조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렇지만 이런 자유 제한의 논쟁이 달갑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는 미국의 유색인종,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다. Huntington에서 만나본 Marie Evans(80세)는 더운 날씨에 밖에서 마스크를 써야 하고 먹고 싶은 식당에서 앉아서 못 먹는 이 상황을 백인들은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구조적으로 그 사람들은 억압이 처음일 것이다. 단 한 번도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지 않았던 백인 남성들이 시청에서 총기 들고 시위하고 그러는 것이다.”
Evans씨에 따르면 조금도 불편함을 감수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지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가난하니까 남아서 시위하는 것 아닌가. 이미 돈 많은 백인들은 뉴욕을 떠났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사실일까. 실제로 New York Times에 따르면 맨해튼의 백인 부유층들은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자 당시 상대적으로 확진자 수가 적었던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남부에 있는 별장으로 피신을 갔다고 한다. 사망자의 관이 병원에서 쏟아져 나올 때, 그리고 그 수많은 관들이 외딴 섬에 차곡차곡 묻힐 때, 뉴욕의 엘리트층들은 의료적 경제적 도움이 절실한 뉴욕시 인구 20%를 넘게 차지하는 유색인종들을 외면한 것이다. 실제로도 뉴욕시의 Queens와 Brooklyn에는 아프리카계, 히스패닉계 미국인들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 살고 있어 확진자 수도 많았으며 전염 속도도 매우 빨랐다고 한다.
뉴욕주는 20일 현재 확진자 수 40만여 명이고 뉴욕시는 절반이 넘는 22만여 명으로 Queens와 Brooklyn을 포함한 뉴욕시는 미국 내 바이러스 진앙지 중 하나이다. 진앙지에서 벗어나 다른 주를 택한 사람들도 있고 뉴욕주 내 전통적인 휴양지인 Long Island를 선택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
뉴욕시에서 멀리 벗어나 동서로 길쭉하게 뻗은 섬의 동쪽으로 갈수록 안전하다는 게 사람들의 심리였다. 섬의 동쪽 끝인 Montauk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여름 별장들은 이른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별장마다 차가 한두대 씩 주차되어 있었다. 전부 조금은 빠른 휴가 아닌 휴가를 온 사람들이었다. 가장 가까운 마트나 식료품점은 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격리 공간으로는 제격이다.
Montauk은 이 긴 섬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이러스를 피해 동쪽 끝을 선택한 사람들은 이 관광지로 몰린다. 그것도 식당 외부 테라스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다 같이 식사를 한다. 놀랍게도 6월 초중순의 일이다. Montauk의 해변은 마스크 없는 사람들만 모였으며 물놀이 이후 몸을 씻는 공간은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앞서 언급한 바이러스를 대하는 인식의 차이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주변 상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한다.
“어쩔 수 없다.” 전복 요리로 유명한 한 가게의 직원, Katherin Dolass(25세)의 말이다. “곧 휴가철이고 사람들은 몰려오는데 장사를 안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밖에 몇 테이블 안 되지만 자리를 마련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4월과 5월에 테이크 아웃과 픽업만 가능했던 다른 해산물 요리 식당의 직원 Jasmine Siddaque(29세)는 “그동안 손실이 너무 컸다. 두 달간 식당에 들어왔다가 내부 식사가 안 된다고 하자 그냥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쩔 수 없이 외부 테라스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 했더니 그나마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부 공간에 손님을 받는다는 것이 공통된 답변이다. 하지만 외부 테이블에서 식사하더라도 띄엄띄엄 앉게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리 넓지도 않은 외부 테라스에서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같은 Long Island 내부에서도 극명하게 갈린다. Jansen씨의 식당의 요리사들은 판데믹 초기에 자신의 가족들을 전부 모아 한 곳에서 생활하게 했다고 한다. 주된 원인은 식당 내부의 환풍구 때문이다. 식당 홀 천장의 환풍구는 조리실로 연결이 되어 혹시나 요리사들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될 수도 있고 음식에 오염이 될 수도 있다고 해 최근에 홀 환풍구에 필터 덮개를 씌웠다.
“[요리사들에게] 고맙죠.” Jansen씨가 말했다.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저 요리사들은 희생을 선택했다. 저들 중 몇 달간 직접적으로 가족을 못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스크뿐만 아니라 거리 두기 및 생활 방역은 코로나 시대의 일상이자 필수가 되었다. 얼굴만 내놓아도 땀이 절로 흐르는 이 뜨거운 여름에 왜 마스크가 필요한지 조금만 더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일 시점이다.
생활 방역은 본인을 위한 것만은 절대 아니다. 내년에도 여름을 바닷가에서, 워터파크에서, 휴양지에서 같이 보낼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위한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Jansen씨가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