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UC 버클리를 찾은 필립 안 커디씨와 그의 강연에 참석한 학생들이 강연이 끝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님 (1868~1938) 의 외손자이신 필립 안 커디씨의 강연이 교내 한인 동아리 CKS (Committee for Korea Studies) 의 주최로 열렸다.
최근 한국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한 커디씨는 이날 특유의 유쾌한 입담으로 청중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며 약 두시간 가량 동안 “Dosan: Seeking Truth in Teaching History” 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도산 안창호를 독립 운동가로만 알고 있지만, 그가 조국의 발전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조선의 사회 개혁을 위해 힘쓰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도산 안창호의 이러한 노력은 미국 정부에서도 인정받아, 무한도전에서도 소개된 바와 같이 LA에서 가장 혼잡한 고속도로의 교차로와 우체국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한다. (각각 Dosan Ahn Chang Ho Memorial Interchange, Dosan Ahn Chang Ho Post Office) 커디씨는 무한도전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산 안창호를 다시 기억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도산 안창호는 조국의 발전을 위해 유학길에 올랐고, 190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일부 사람들이 리버사이드를 독립 운동의 근거지였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산 안창호를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이 조선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힘썼다고 말했다.
일본의 지배 아래 한국인이 행복하다는 망언을 하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대한제국의 외교고문 스티븐스를 저격한 사건 또한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났다. 1908년 3월 23일, 장인환, 전명훈 의사가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에서 오클랜드로 이동하려던 미국인 스티븐스를 총으로 저격했다. 장인환, 전명훈 의사의 의거는 해외에서 일어난 첫 의열 투쟁으로써 이후 많은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위치한 한인회관에는 장인환과 전명운 의사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다.
해외 독립 운동의 본부 역할을 했던 대한인 국민회 중앙 총회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다.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스티븐스 저격 의거 이후 한인단체 통합 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1910년에 대한인 국민회가 결성되었다. 대한인 국민회는 샌프란시스코에 중앙총회를 두고 북미, 하와이, 시베리아, 만주 등지에 지방총회를 가지고 있었다. 또 기관지인 ‘신한민보’를 발간하여 항일 의식 고취와 해외 한민족의 독립 운동에 힘쓰기도 하였다.
커디씨는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리버사이드가 해외 독립 운동의 근거지였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역사가 잘못 알려지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특히 새로 집필된 국정 교과서에 실리게 될 도산 안창호와 관련된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몇 차례나 언급하였다. 그는 안창호가 중앙총회의 초대 회장이 아니라 2대 회장이었고, 교과서에 실리게 될 사진은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1915년 하와이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정정했다. 그는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역사가 왜곡되어서는 안 되며, 진실이 알려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날 강연을 찾은 UC 버클리 학생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조언했다.
류혜민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