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민지 때 유출된 조선 시대 고서 5천여 권이 UC 버클리 한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왜 조선 시대 고서들이 UC 버클리 도서관에 있는 것일까? UC 버클리 동아시아 도서관의 지하로 내려가면 특별한 서고가 나타난다. ‘아사미 문고’ 라는 일본인 이름으로 된 서고에 한국 고서 5천여 권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국내에 없는 유일 본만 30여 권이 넘는다고 한다.
<UC 버클리의 동아시아 도서관 전경>
아사미 린타로우는 동경 제국대학을 졸업 후 판사로 임용, 일본에서 판사로 활동하다가 1906년 을사늑약 이후 통감부의 고문변호사로 조선에 파견된다. 이후 1910년 한일합방이 된 후 아사미는 조선총독부의 판사와 고등법원 판사로 활동했다. 조선의 고문서와 전적에 관심이 많았던 아사미는 이를 수집하였고, ‘아사미 문고’라는 이름을 붙여 보관소에 보관 하였다. 1943년 아사미가 세상을 떠난 뒤, 1950년 그의 자손은 7500달러에 모든 고문서와 전적들을 미국인에게 팔게 된다. 이렇게 해서 미국으로 건너온 고서들이 현재 UC 버클리 대학 동아시아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 버클리 대학에 도착한 ‘아사미 문고’>
아사미 문고에는 다산 정약용이 친필로 쓴 표지가 있는 <시경강의>,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주역> 등 정약용의 저서가 19종 97책이 있다. 아사미 문고의 학술적 가치가 알려짐에 따라 국내 연구진들이 참여하여 이를 디지털 자료로 만들어 공개 하기도 했다.
아사미 문고에는 정약용의 저서 말고도 조선 시대에 간행된 전통적인 법에 관한 서적들이 있다. 또한, 수많은 문집이 있는데 이중 조선 22대 국왕 정조의 생모이며,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의 회고록인 <한중록> 필사본은 그 내용과 필체가 진본에 가깝다고 한다. 혜경궁 홍씨는 남편이 시아버지(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고, 이후 왕이 된 아들 정조는 그간 자신의 권력 승계를 방해해 왔으며,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던 친정 집안을 처단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혜경궁 홍씨는 이러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을 남긴다. 한중록은 읍혈록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피눈물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버클리에 있는 한중록은 여러 판본 중에서도 궁체로 정성 들여 필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 영조 때 김수장이 편찬한 가집인 <해동가요>의 필사본은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최선본으로 보전되어 있다. 조선 후기 숙종 때, 서포 김만중이 지은 고대소설인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한문 목판본도 있는데, 이 두 목판본은 아사미 문고의 가장 대표적인 판본으로 손꼽힌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60여 년 동안 일본인 이름이 붙어 있었던 우리 선조들의 고서들. 2006년 동아시아 도서관 한국학 선임 사서인 장재용씨를 비롯한 소설가 이문열, 인천전문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오용섭, 서울대 국문과 교수 이종묵씨 등이 ‘아사미 문고’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였다. 우리 선조들이 만들고 기록한 것이지만, 지금 당장 반환받는 건 불가능하다. ‘아사미 문고’라는 명칭을 우리 것으로 바꾼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싶다.
곽인욱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