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아이오와

1381

University of Iowa 유학생들이 직접 들려주는

미국 유학 이야기

아이오와 대학교

인적이 드물었던 여름방학과는 달리, 지금 아이오와 대학교 캠퍼스엔 교실로 향하는 학생들로 북적거린다. 꿈같던 여름방학을 뒤로 하고 학업을 맞이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가지각색이다. 이미 학교 생활에 많이 적응된 졸업 준비생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이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할 새내기들의 얼굴엔 기대감과 열정이 보인다. 개강한 지 일주일이 다 되가는 지금은 벌써 8월을 지나, 9월로 접어들었다. 간간히 한인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을 보며 ‘그들은 어쩌다 아이오와 대학교까지 오게 된 걸까?’라는 궁금증이 났다.

한국 학생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는 루트와 배경은 각자 다양하다. 이번 기사에서는 한국 학생들의 유학 생활을 파헤쳐 보기 위해서 각각 다른 배경을 가지고 아이오와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3명의 한인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 또 그들이 생각하는 아이오와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캠퍼스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카페로 들어서자 앳된 얼굴을 띈 홍성빈 양이 앉아 있다. 홍 양은 아이오와 대학교에 입학한 지 이제 갓 한 달이 된 스무 살의 새내기다. 유학생활이 지금까지 아이오와 대학교에 입학한 한달의 시간을 빼고 전무한 그녀는 이 곳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을까?

홍 양은 한국에서 미국 교육과정을 이행하는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왔다. 미국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그녀는 미국식 수능시험 SAT(Scholastic Aptitude Test)를 쳤다. 예전에 SAT는 Reading, Maths, Writing, Essay로 4가지 영역의 시험을 봐야 했는데, 최근에 들어서 Reading과 Writing이 한 영역으로 합쳐지고 Essay가 필수가 아닌 선택 옵션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웬만한 상위권 미국 대학들은 Essay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홍 양도 Essay를 봤다고 한다. 홍 양은 그녀가 아이오와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제일 큰 이유를 그녀의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으로 꼽는다. “일단 저는 뭐든지 잘 까먹어요. 그래서 항상 자주 봐야 해요. 학교 성적을 잘 받아야 하니까 그 순간순간 마다 열심히 했어요.” 그녀는 “하나하나 대충하지 않았어요. 저는 노력을 안 하면 성적이 안 나와요. 진짜 열심히 했어요”라며 자신을 ‘노력파’ 라고 칭했다.

홍 양의 전공은 간호학이다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간호학 학사를 취득하기 위해선 pre-nursing 2년 nursing 2년, 통합 4년 동안 학점 이수를 하게 되어 있다. 졸업하기 전 4학년 때에 nursing 자격증도 취득해야 한다). “아이오와에 오게 된 이유요? 전공 때문에 왔어요. 아이오와가 간호학 프로그램이 좋다고…” 사실 그녀는 원래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웬만한 시민권자가 아니면 미국에서 의사가 되는 게 불가능하잖아요.그래서 비슷한 쪽으로 찾다가 간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라며 간호학을 전공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녀의 간호학에 대한 애정은 특별하다. 그녀가 간호학을 애정하게 된 이유는 그녀의 유년기 시절에서부터 있다. “제가 중학교 1,2학년 때 텔레비전에서 의학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았어요. 그런 걸 보면 심장이 막 뛰고 나중에 꼭 해보고 싶었어요.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그 직업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일단은 의사라는 직업이 너무 멋있었어요. 흰 가운을 입고 환자를 돌보는 게 너무 멋있잖아요.” 또 그녀는 전문적인 일을 가지고 싶었다며 “의사나 간호사가 그 분야에서 굉장히 전문적인 직업이기에 매력을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이오와의 간호학이 어렵다고 하는 주변 사람들의 염려에 겁이 나기도 하지만 중간에 전과하는 일 없이 학사를 무사히 취득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을 전했다.

시끌벅적하고 사람이 북적거리는 대도시 보다 시골이 더 끌린다는 홍 양은 아이오와 생활에 나름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오와가 그녀의 첫 유학 발걸음이기에 신기한 것도 많다. “일단은 미국이 역시 스케일은 남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학교 풋볼경기장에서 열린 오리엔테이션에 신입생만 몇천 명이 모이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아, 내가 진짜 미국에 왔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학생의 생각의 다양성가 자유로움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미국식 교육방식을 미국에서 직접 느낄 수 있어 감회가 더 새롭다고도 전했다.

반면에 홍 양은 “저는 여기 간호학을 선택한 이유가 아무 목적없이 오기 싫었어요. 요즘 유학생들이 많기는 하지만 유학을 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아니잖아요. 돈도 많이 들고 힘든 생활을 해야 하니까 정말 아무 생각없이 공부만 하다가 졸업하고 돌아가기 싫었어요. 제 눈에 딱 보이는 뭔가를 얻고 싶었거든요”라며 자신이 미국에 온 명확한 이유를 잊지 않으려고 꾸준히 노력한다. 또한 그녀는 “저는 이곳에 간호학 전공으로 온 게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 미국에 공부하러 왔다’는 타이틀을 갖고 싶어서 왔어요. 부모님이 보내주신 만큼 뭔가 얻고 싶었어요. 그래서 목적없이 도피성으로 유학을 오는 것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힘들잖아요. 목적이 있고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오는 거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것 없이 오면 무너질 것 같아요”라며 이 곳에서의 목적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까 그녀의 풋내기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성숙하고 노련한 유학생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번에 만날 한재은 양은 전에 만난 홍성빈 양과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녀의 표정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아이오와에 오게 된 이유를 묻자 “힐러리 같은 여자가 되기 위해서?”라는 농담을 던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 그녀는 아이오와 생활만 올해로 6년차인 대학교 2학년 아이오와 베테랑이다.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이오와로 넘어왔다. 사실 그녀는 처음 미국에 올 때 너무 두렵고 떨렸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이미 미국에 와있던 오빠와 친척들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한 양은 아이오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 계기는 우선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왔고 위에 적었듯이 가족이 여기 있기에 더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전했다. 한 양의 이모는 아이오와 대학교 병원 약 연구실에서 연구원이셨던 전력이 있었고 그녀의 오빠는 아이오와 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한 양은 “처음엔 너무 무서워서 안 가겠다고 했어요”라며 그 당시 미국에 오기 전 그녀의 두려움과 떨림을 전했다. 원래 계획으로는 미국을 1년 반만 경험하고 갈 계획으로 미국 비자도 1년 반 짜리만 신청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 고등학교보다 여기가 더 좋았어요. 한국 고등학교는 너무 치열하잖아요. 여기서 공부할 때 성적도 더 잘 나오기도 했고요”라며 미국의 교육방식이 조금 덜 치열하고 자유로워서 좋았고 “여기는 학원, 과외 같은 게 없어서 좋았어요. 한국은 너무 힘들었어요”라며 미국에 남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한 양은 학교 입학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장학금이 끊긴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녀는 성적이 좋은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내내 한국을 가본 적이 없어서 학원을 못 다녔어요. 문제 많이 풀고 여기 있었던 친척 언니 오빠들한테 물어보는 게 노하우라면 나름의 노하우인 것 같아요”라며 그녀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는 미국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ACT(American College Test, 미국 대학 입학 학력고사)와 토플을 준비했다. ACT는 크게 수학, 과학, 영어(문법 중점), 리딩 이렇게 네 분야로 나뉜다고 답했다. 그녀는 토플을 준비하기 위해서 3년 동안 토플책을 8권이나 봤다고 한다. 이것 또한 꾸준한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땐 구체적이거나 특별한 목적이 없었지만 현재 화학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녀는 미래에 조향사를 꿈꾸고 있다. “대학 졸업하면 석유 회사나 향수 회사에 취직해서 경력을 쌓고 먼 훗날에 프랑스에 있는 향수학교를 가고 싶어요.” 사실 그녀는 지금 전공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고 한다. 그녀는 “원래 건축학 쪽을 생각했는데 부모님이 크게 반대하셨고 학비도 너무 비쌌죠. 아이오와 대학교 학비가 그래도 비교적 다른 학교보다는 싼 편이잖아요” 라며 “어렸을 때부터 건축학을 해보고 싶었어서 후회가 좀 되긴 하지만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라며 지금 하고 있는 분야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 양이 아이오와 6년차 베테랑이지만 그녀에게도 힘든 점은 있었고 지금도 존재한다. 그녀는 “가족이랑 떨어져 지내는 게 제일 힘든 점인 것 같아요”라며 아이오와에 온 지 6년이 넘었지만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은 처음 왔을 때의 마음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더불어 아이오와 대학교가 아무리 가성비가 좋은 대학이라고 할지라도 만만치 않은 유학비를 생각했을 때 오는 부담감이 또 하나의 힘든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힘든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롭고 신기한 경험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홈커밍 (학교 동문들과 아이오와 주민들이 모여 하는 페스티벌)이나 프롬처럼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들은 제 입장에서 신기했어요”라고 말했다. 또 아이오와 대학교가 다운타운 근처에 학생 위주의 캠퍼스이다 보니 평화롭고 안전해서 좋다며 아이오와 대학교의 한 장점을 들었다.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고는 하지만 한 양은 내심 불안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는 영어는 미국 가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 보면 한국에서 대학 다니는 학생들이 영어도 더 잘하는 것 같다”며 “미래에 한국에서 일을 한다면 특별한 점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기 때문에 여기에 있을 때 더 많이 노력하고 경험할 거예요”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래도 “이왕 하기로 마음 먹고 왔으면 여기서는 즐기고, 다른 학교나 한국 학교랑 비교해봤자 힘든 건 자기 자신이니까 여기서 재밌게 하면 좋을 거예요”라며 웃었다. 그래서 그녀는 고학년이 되면 교수님들이 진행하는 스케일이 큰 연구에 참여할 계획이다. 나중에 사회에 나가 살아남기 위한 큰 메리트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한 양은 마지막 커리어에 목적지를 한국으로 두고 있다. 제일 큰 이유는 “한국이니까”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과 추억이 있는 한국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곧 아이오와 생활 6년 차를 넘어 7년 차에 접어들 그녀의 앞길에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온화한 웃음과 차분한 목소리에 그의 겸손 또한 묻어난다. 이번에 만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이제 3학년인 된 이예찬 군이다. 이 군의 인생 스토리는 조금 특별하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 1살이 되던 해에 인도로 넘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인도에 부모님과 함께 거주했다. 특이한 것은 그는 인도에서 국제학교에 다니지 않고 고등학생 때까지 인도 현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인도인과 현지 언어로 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인도에 왔으면 인도에 대해서 더 알아야 되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다. 미국에 온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답했다. “원래는 미국에 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 군의 배경을 고려했을 때 국제적인 일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고 또 앞으로 나아가 국제적인 일을 하려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이 군에게 미국유학을 적극 권유했다. 그리고 그는 생각을 바꿨다. “제 삶이 아버지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해주시는 말씀들이 귀하다고 생각했죠.”

이 군의 전공은 국제학 (international studies)이다. 위에 명시한 것처럼 원래는 생각에 없던 미국 유학의 길은 이 군과 아버지는 늦게나마 준비에 착수했다. SAT에 경험이 없던 이 군은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며 준비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시민권이 이미 있던 이 군에게 입학 절차가 국제학생들 보다는 수월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아이오와 대학교를 알게 됐고 입학에 성공한 그는 “제가 공부나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고등학교 때 꾸준히 열심히 노력하고 성적유지를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라며 그 나름의 입학 노하우를 전했다.

이 군은 아이오와 생활 자체가 자신에겐 특별한 경험이라고 한다. 그는 “혼자 생활해보는 걸 대학에 와서 처음 해봤어요. ‘모든 걸 내가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영어도 늘리고 미국인들이랑 어울리려는 희망과 목표가 있었죠”라며 초기 유학생활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에 그는 무조건 뭔가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인도 발음이 지금은 많이 고쳐지긴 했는데 그 때는 아니었거든요. 예전엔 미국 영화 같은 걸 보면서 미국 발음을 연습하고 흉내냈어요”라는 말이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또 미국인을 마주쳤을 때 “Hi”라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아 평소 옆에 지나가는 미국인들의 대화를 엿듣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기에 이런 좋은 신선한 긴장감과 노력이 재밌었어요. 초반에 저의 자세가 기억에 남네요”라며 회상했다. 또한 미국이라는 나라는 학생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 같아 좋았다고 한다. 그는 “인도는 한국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개선시킨다고는 하는데 대부분 주입식 교육으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하지만 미국은 확실히 달라요. 생각이 자랄 수 있도록 부추겨주는 것 같아요”라며 활짝 웃었다.

이 군이 열심히 노력한 만큼 고충도 있었다. 이 군은 “한국인 커뮤니티에 많이 나가다 보니까 한인들이랑 친해지고 더 편한 곳에 있게 되더라고요”라고 공감하고 “아무래도 한국인들끼리 있으면 통하는 것도 많고 더 편안하니까 제 자신이 예전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라며 과거를 돌아봤다. 오히려 미국인들과 어울리기 어렵다고 생각하니까 한국인에게 의지하고, 한국인 친구에게 의지하니까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 같다며 예전의 노력과 의지를 되새기고 앞으로 더 유익한 유학생활을 할 개선의 의지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미래의 유학생들에게 남겨줄 말이 없냐고 묻자 그는 “미국이 아니고 어디로 유학을 가든지 그 나라에 있을 때 만큼은 그 나라에서 뭔가를 얻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는 “어렵지만 자신을 그 무리에 던졌을 때 비로소 뭔가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인도에서도 현지인들이랑 어울릴 수 있었던 이유가 어쩔 수 없이 그런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군은 “미국에 공짜로 온 게 아니기 때문에 투자한 만큼의 아웃컴을 얻어 갔으면 좋겠어요”라며 다시 한 번 활짝 웃었다. 그의 남은 대학생활에도 효율적인 아웃컴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세 명의 한인 학생들을 만나봤지만 간단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그들의 성실함과 지금까지의 꾸준한 노력이다. 그들의 앞길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며 전세계에 있는 한인 유학생들에게도 건투를 빈다.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는 김준혁 입니다. Daily Iowan TV (DITV)에서 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학교, 공동체, 사회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소식들, 사람 중심의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몸소 현장에서 체험하고 취재하며 균형되고 참된 시각으로 생생하고 흥미롭게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