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해줄 현대 소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장시간 되풀이되는 문자의 연속에서 끊임없는 상상력을 발휘해 생생한 이야기 속 장면들을 그려내는 것에 있다. 고로 독서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며, 나아가 그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시에 독자는 책이 아무리 흥미로울지언정 등장인물들과 소통하지 못하게 된다. 책이란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에 나 자신을 투영하고 실제 자신의 삶을 통찰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다. 요즘 독서를 하는 나를 보며 흥미는 있지만 불가피하게 독서를 미뤘던 사람들이 가독성이 높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묻곤 한다. 내가 책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은 읽고 나서 길게 여운이 남아 일상생활 중에도 그 이야기의 파편들이 뇌 속에 박혀 떨쳐지지 않는 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를 빌려 개인적으로 가장 여운이 남았던 현대 소설 네 권을 추천하려 한다.
-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Norwegian Wood – Murakami Haruki)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처음 들어와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되어 “하루키 붐”을 일으킨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설 1위를 차지한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책으로써 젊은 세대로부터 매우 많은 공감을 얻은 책이다. 이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 자아의 무게와 외압으로부터 긁히고 부서지는 아픔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 아픔을 경험할 때마다 사람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상실하게 되고, 더 나아가 죽음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사람과 가까이 공존하는지가 이 책의 주요 논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작가가 강조하고 싶은 의미는 이에 따른 회복과 치유에 있으며, 이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매우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2.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The Alchemist – Paulo Coellho)
처음 이 책을 집었을 때 막연한 판타지일 것 같아서 수십 번을 읽기를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세차게 가슴이 뛰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대표작으로써 연금술사는 현실에 대한 안주와 불확실한 꿈의 대립을 평범한 양치기 소년의 여정으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현실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비록 명쾌한 해답은 주지 못하지만, 그 부서진 꿈들의 조각을 다시 모을 수 있는 어떠한 울림을 주는 이 책은 나에겐 아주 크나큰 여운을 남긴 작품이었다.
3.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Blindness – Jose Saramago)
이 책은 “만약에 세상 사람들 모두가 눈이 멀어 단 한 명만이 볼 수 있다면”이라는 주제로, 현대의 익명성과 안개에 가려진 개개인의 정체성으로부터 오는 파국을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우리가 눈을 뜨고 생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뜬장님처럼 타인의 가치는 무참히 무시해버리는 오늘날의 잔인함을 다룬 이 책은 나를 중간중간 멈춰세워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해주었다. 지역적 인종적 특색과 등장인물의 실명이 완전히 결여된 이 책은 섬뜩함과 황량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 오늘날엔 매우 드문 특색있는 작품이었다.
4.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The Devotion of Suspect X – Higashino Keigo)
나를 추리물의 세계로 끌어들여 준 게이고의 대표작인 이 책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구축한 천재 수학자와 이를 집요하게 파헤치려 하는 천재 물리학자의 대결이라는 세팅만으로도 엄청난 이목을 끌었었던 작품이다. 이 추리소설의 장점은 숨 막히는 스토리텔링과 빈틈없는 플롯으로 독자를 한눈팔 수 없게 만든다는 점도 있지만, 그와 더불어 이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의 헌신에서부터 오는 애틋함이 이야기의 치밀함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의 거장으로서 이 작품은 미스터리 장르를 선호한다면 꼭 읽어봐야 하는 책들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