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했던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가족들이 한가롭게 길을 나섰다. 연일 뜨거운 땡볕을 피해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만 쐬고 있던 터라 선선한 바닷바람이 그리웠다. 지난 5월 하순 컬버시티부터 샌타모니카까지 연장 운행을 시작한 메트로 엑스포 라인도 궁금했다.
컬버시티부터 샌타모니카까지 6.6마일의 거리에 7개의 역이 예전 퍼시픽 일렉트릭 전차가 사용하던 엑스포지션 철길을 따라 건설됐다고 한다. 1953년 전차 운행이 전면 중단된 지 63년 만에 다시 그 길을 따라 메트로가 달리는 것이다.
주차전쟁과 교통체증을 걱정해 주차장이 마련돼 있는 전철역에 주차를 하고 메트로를 타고 가려던 것이 어느새 샌타모니카에 이르고 말았다. 도로 사정이 좋았으니, 그렇다 치고 주차전쟁은 주중이었음에도 여전하다.
‘다운타운 샌타모니카’역이 들어서 있는 곳은 샌타모니카 피어가 눈 앞에 보이는 중심가 콜로라도 애비뉴, 부기보드와 물놀이용품을 가진 청소년들이 한 무리 메트로역으로 향한다. 주차걱정 없는 그들이 부럽다.
이제 샌타모니카는 메트로로 가는 것이 진리. LA 한인타운에서는 윌셔/버몬트 역에서 퍼플라인이나 레드라인을 타고 다운타운 7가/메트로센터 역에서 엑스포 라인으로 갈아타거나, 엑스포/크렌쇼 역에 주차를 하고 메트로를 이용하면 된다. 이번 연장구간인 엑스포/세펄베다(260개), 엑스포/번디(250개), 17가/SMC(70개) 등 3개 역에는 주차시설이 마련돼 있으니, 편리한 곳에 무료로 주차하고 메트로를 이용해도 된다. 주차걱정·교통체증 없으니, 열대야 피해 샌타모니카 피어로 잠깐 저녁 나들이 어떨까.
통바공원
소라 모양의 철골조 전망대가 인상적이다. 지상 18피트 높이에 마련된 두 개의 전망대가 인도변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어 이곳에 서면 오션 애비뉴 너머로 샌타모니카 피어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 2013년말 주차장으로 쓰였던 6.2에이커의 부지에 수천 년 전 이곳에 살았던 통바(Tongva) 부족의 이름을 따서 조성했다. 피어 입구의 콜로라도와 오션 애비뉴 사거리에 위치해 있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퍼시픽 파크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이거나 연인들이라면 이곳 또한 피해갈 수 없는 곳. 피어 초입의 가족 오락공원이다.
세계 유일의 솔라에너지로 작동되는 허니문카(Ferris Wheel)를 비롯해서 롤러 코스터, 바이킹 등 모두 13개의 놀이기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해질 무렵 바다 위로 장엄하게 펼쳐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즐기는 허니문카는 그 중 최고다.
갤러리 순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버가못 스테이션 아츠센터’가 26가/버가못 스테이션에 자리하고 있다. 많은 한인 작가들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는 이곳에는 한인 소유의 갤러리들도 포진, 뉴욕의 ‘소호’나 엘리제 화랑가를 무색케 하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버가못 스테이션이란 이름은 1875년부터 1953년까지 LA와 샌타모니카 피어를 오가던 레드라인 트롤리의 정거장이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일대는 얼음공장, 워터 히터 공장 등이 가동되던 곳으로 94년 8에이커의 부지에 화랑 37개가 들어서면서 서부의 대표 화랑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자전거 타기
샌타모니카의 아이콘은 뭐니뭐니해도 자전거다. 작렬하는 태양, 하얗게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 하늘을 찌를듯한 팜트리를 바라보며 달리는 자전거는 빼놓을 수 없는 샌타모니카의 매력이다. 해변을 따라 잠시만 달려도 맨해튼 비치에 이른다.
다운타운 샌타모니카역 대각선 맞은편의 바이크센터를 비롯해서 피어와 해변도로 등에 렌털샵이 산재해 있다. 반경 서너 블록 사이에 자전거 대여점이 무려 15개에 이른다. 대부분의 대여점이 저녁 8시까지 영업하므로 자전거를 즐기려면 오후 쯤에는 나서야 되겠다.
색다른 탈 것을 기대한다면 세그웨이(Segway)는 어떨까. 2시간 동안 자유롭게 빌릴 수도 있고, 가이드 투어를 할 수도 있다. 1인당 84달러. 좀 비싼게 흠이다.
쇼핑
3가 프로미나드 쇼핑지구의 남쪽 끝 쇼핑몰인 ‘샌타모니카 플레이스’가 메트로역 바로 대각선 건너편에 있어 주차 걱정없이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노드스토롬, 블루밍데일 백화점과 아크라이트 시네마, 루이 뷔통, 버버리, 엠포리오 아르마니 등 극장과 명품 브랜드가 모여 있어 쇼핑과 문화 등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 준다.
무얼 먹을까
실컷 즐겼으면 운치있는 식사는 기본, “집에 가서 편안하게 먹지”라고 말하는 가장은 빵점. 세상 어떤 아내가 기분 좋게 나들이하고 집에 가자마자 부엌으로 가는 걸 좋아할까.
오션 애비뉴를 따라 남쪽으로 ‘차차치킨(Cha Cha Chicken)’ 등 바닷가와 어울리는 분위기의 식당들이 있다. 로스트 치킨, 코코넛 프라이드 치킨 등 카리브해 스타일의 닭고기와 새우 요리, 샐러드 등 대부분 10달러 미만.
메트로역 앞의 프로미나드에도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들이 많다.
글ㆍ사진 백종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