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남부 제 1의 도시, 애틀랜타의 눈부신 성장과 그 이면의 그늘.
미국 동남부에 위치한 조지아 주의 주도인 애틀랜타는 2010년대 들어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대도시 중 하나이다. 미국 인구조사국(U.S. Census Bureau)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애틀랜타 광역권에는 600만 명이 상주 중이다. 이는 2010년의 520만 명 대비 약 80만 명, 백분율로는 15% 상승한 수치인데, 같은 기간 동안 시카고 광역권의 인구 성장폭이 20만 명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성장세를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실제로 애틀랜타는 휴스턴과 댈러스 다음으로 남부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대도시이며, 지역 총생산 규모 역시 전국 10위 안에 랭크되어 있다. 코카콜라, 델타항공 등 포춘지(紙) 선정 500대 기업 중 무려 18개가 애틀랜타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이는 뉴욕, LA, 휴스턴, 그리고 댈러스 다음으로 많은 숫자이다. 기아자동차, 포르쉐 등이 인근에 지사와 생산기지를 두고 있으며, CNN 본사 역시 애틀랜타의 중심부인 미드타운에 위치해 있다. LA, 뉴욕과 같은 기존 대도시의 인건비나 부지 비용, 그리고 법인세를 감당하지 못한 기업들이 남부로 대거 이동한 결과였다.
그러나 애틀랜타는 이러한 양적 성장과 별개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에 신음하는 도시 중 하나이다. 고학력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한 고임금 일자리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빈민층과 중산층 경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보행자 친화적이지 못한 도시 구조 역시 발목을 잡았다. 자가용 차량이 없는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거나 교류하기 어려웠고, 이에 따라 지역 간 고립이 심화된 것.
이에 따라 기존에 탄탄한 기반이 구축되었던 북부는 급성장을 이룩한 반면, 다수의 남부 지역은 급속도로 슬럼화되기 시작했다. 일례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본부는 에모리 대학교 캠퍼스가 있는 북동부의 디케이터(Decatur)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상술된 18개 기업 본부 역시 대부분 광역권 북부에 자리를 잡았다. 애틀랜타 한인타운이 북동부의 둘루스(Duluth) 지역에 자리잡은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애틀랜타 북부 지역에 거주 중인 인구의 대다수는 백인 중산층이며,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계 인구 역시 북부에 대부분 몰려 있다.
이와는 반대로 다운타운 남부로 조금만 내려가도 피츠버그, 미케닉스빌과 같은 지역은 애틀랜타 전체 평균 대비 최대 300% 이상의 범죄율을 기록할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다. 기아자동차와 포르쉐가 남부지역에서는 그 존재만으로도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데, 과거 방직산업의 쇠퇴로 몰락일로를 걷던 남부지역 경제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애틀랜타 남부의 주류는 흑인 빈민층이며, 히스패닉 커뮤니티가 남부 한 켠에 자리해 있다.
대학원생의 석사논문, 애틀랜타를 관통하는 도시계획이 되다.
1999년, 조지아 공과대학교 학생이었던 라이언 그래블(Ryan Gravel)은 통학 시간마다 I-285 고속도로의 교통체증을 뚫고 차를 운전하는 데 신물이 나 있었다. 그래블은 애틀랜타의 차량 의존적인(Car centric) 구조가 근본 원인이라고 봤으며, 과거 애틀랜타 시 주변에서 봤던 폐철도를 인도로 바꾸는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같은 해 “벨트라인(Beltline)” 계획을 담은 석사논문을 제출했다. 이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폐철도 및 주변 부지를 활용해 35km에 달하는 산책로를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애틀랜타 전 지역의 균형잡힌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계획의 주된 골자였다. 계획에는 노면전차 노선 및 경전철역 건설계획, 문화공간 조성, 공공주택 건립 등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논문이 작성된 시점으로부터 3년이 지난 2002년, 셜리 프랭클린(Shirley Franklin, 민주당)이 시장직에 당선되며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 당시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 그리고 인종간 분리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애틀랜타 시 당국은 그래블의 제안서 내용을 바탕으로 돌파구를 찾고자 했고, 벨트라인 계획은 순식간에 공식 안건으로 상정되기에 이른다. 이후 벨트라인은 프랭클린 시장의 2번째 임기가 시작되던 2006년부터 착공했으며, 그 결과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가장 잘 알려진 벨트라인 산책로는 애틀랜타 도심 북동부를 가로지르는 이스트사이드 트레일(Eastside Trail)이 있다. 트레일의 시작점은 동부 주민들의 주 산책로인 인먼 파크(Inman Park) 근처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서 북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2030 세대의 핫플레이스인 폰스 시티 마켓(Ponce City Market)이 모습을 드러낸다. 폰즈에서 식사와 쇼핑을 한 뒤 조금 더 올라가면 애틀랜타에서 가장 큰 피드몬트 공원(Piedmont Park)이 나오는데, 뉴욕의 센트럴 파크나 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고층 아파트와 기업 사옥들이 즐비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애틀랜타 중흥기를 이끈 영웅인가, 아니면 젠트리피케이션의 화신인가?
이스트사이드 트레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경제적 효과 때문이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산책로, 주택 및 여타 문화시설 구축에 투입된 비용은 약 6억 달러. 분명 적은 돈은 아니지만, 같은 기간 동안 트레일 인근 지역에서 창출된 수익은 무려 62억 달러에 달한다. 단순 수치로만 환산하면 투자 대비 10배 이상의 수익을 낸 셈이다. 주변 상권이 활성화됨에 따라 수많은 고급 인력들이 벨트라인으로 흡수되었으며, 주변 상권과 주택가 역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벨트라인의 발전과 별개로 애틀랜타의 범죄율과 빈부격차 문제는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악화되었다. 벨트라인 인근의 미케닉스빌 지역은 지난 10년 간 범죄율이 300%까지 치솟았으며, 거주지역의 인종간 경계는 더욱 선명해졌다. 상권이 살아나며 주변 집값도 함께 뛰었고, 본래 그 지역에 거주 중이던 이들은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남부 또는 다운타운 중심부로 밀려났다.
벨트라인의 수익성이 검증되기 무섭게 애틀랜타 시 당국은 공공주택 건립 및 바우처 발급에 책정된 예산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빈민층 및 노동자계층의 유입에 따라 치안이 악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궤도전차 및 경전철 노선 건설계획 중 상당수가 취소되었고, 남부 지역의 사람들은 북부로 흡수되는 대신 벨트라인이라는 이름의 경계선 밖으로 밀려났다. 애틀랜타 다운타운 남부의 정주여건 개선을 목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결과적으로 부자 동네가 되었을 뿐 가난한 이들은 발 디딜 곳이 없게 되었다.
벨트라인의 아버지가 내세울 다음 계획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환경이 개선되고 외부 인력이 유입됩에 따라 원주민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이다. 한국의 경의선 숲길 역시 본래 경의선 폐철도 주변의 환경 개선을 위해 시작되었지만, 상권이 활성화되고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원래 주민들이 갈 곳을 잃은 바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야말로 이른바 “뜨는 동네”가 지닌 근본적 한계인 것이다. 애틀랜타 지역 언론들은 지난 15년간 벨트라인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여타 도시계획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진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벨트라인 계획을 처음 발표하고, 이후 애틀랜타 시 당국과 함께 계획을 추진해왔던 라이언 그래블 역시 프로젝트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2016년, 그래블은 애틀랜타 시 당국의 공공주택 계획 축소에 반발하며 벨트라인 프로젝트 이사회 의장 자리를 내려놓았다. 이제 아예 벨트라인에 상주하고 있는 그는, 최근 벨트라인 트레일 바로 옆에 애프터카(Aftercar)라는 식당 겸 회의공간을 마련했다. 벨트라인 프로젝트의 한계를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애프터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래블은 여전히 차량 의존적이고 상호 고립적인 애틀랜타 시의 근본적인 한계를 바꾸고자 한다. 과연 그는 이 공간을 통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나아가 애틀랜타를 살기 좋은 도시로 이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