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 대학교가 자리해 있는 아이오와 시티는 북미지역 유일의 유네스코 선정 세계 문학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이전 기사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매년 세계 최대 규모의 문학 워크숍이 이곳에서 개최되며, 세계적인 작가들이 매년 이곳을 방문한다.
그러나 문학 전공자들을 제외한 타 전공 학생들은 이 워크숍이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설령 워크숍에 관심이 있을지라도 경제적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문학을 전공으로 삼는 데는 위험이 따르며, 자연스럽게 학교 수업을 통해 문학을 접하는 빈도 역시 줄어들게 된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개설된 강좌가 바로 문예창작 및 스튜디오 워크숍(Creative Writing and Studio Workshop, CW:1800)이다. 문학 전공자의 필수 개론인 동시에 비전공자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인기를 자랑하는 아이오와 대학교 최고의 교양수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수업에 대한 첫인상>
필자는 군복무를 앞두고 있던 2018년 봄학기에 본 강좌를 수강했다. 졸업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전공과목이 시간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기였고, 18학점 5과목 중 단 하나라도 마음 편히 수강하고자 하는 생각이 가장 컸다. 한편으로는 학생기자로 일할 당시 지역사회에 산재해 있는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이 역시 수강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문학 전공자가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개론수업이었지만, 막상 강의실에 들어선 직후 마주앉게 된 20여명의 학생들 중 문학 전공자는 단 4명 뿐이었다. 애초에 문학 단일전공자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숫자는 고무적이었는데, 그만큼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방증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 비전공자들도 쉽게 신청할 정도로 수업의 진입장벽이 낮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머릿속에는 걱정부터 앞섰다. 신입생 시절 연세대학교에서 학점교류형 여름학기를 이수할 당시 멋모르고 영문학 수업을 신청했다 크게 데였던 기억 때문이었다. 필자가 기억하는 영문학은 영어 고어(古語)로 이루어진, 현지 학생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장들을 일방적으로 머릿속에 밀어넣어야 하는 고리타분한 학문이었다. 당시 수업을 진행했던 모 대학의 객원교수는 학계의 해석을 암기하도록 했다. 학생 스스로 해석하고 논의할 여지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수업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수업이 시작되는 순간 필자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우려는 결국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신촌에서 들었던 문학수업과는 달리 원탁 형태로 배치된 의자와 책상, 그리고 그 가운데로 유유히 걸어들어가는 장신의 근육질 남성. 잠시 스포츠교육학 수업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강의실 번호는 분명 강의계획서에 적혀있는 것과 일치했다.
강사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학생들 중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이면서도 가장 체격이 큰 축에 속했던 필자를 바라보며 “혹시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누구예요?”라고 대뜸 물었다. 당시 필자는 현 세대 미국 힙합의 대부로 평가받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열성팬이었다. 켄드릭 라마라고 답하니 “< To Pimp a Butterfly > 라는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 있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학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가 힙합에 대해 논하다니! 강사는 곧 다른 학생들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했고, 학생들은 각각 재즈, 메탈, 컨트리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을 언급했다. 놀라운 점이 있다면, 강사는 학생들이 언급한 거의 모든 뮤지션들을 알고 있었으며, 설령 모르더라도 장르 자체에 대해서는 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고전문학과는 달리 다양한 장르를 바탕으로 수업이 진행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진행 방식 및 후기>
강사는 매주마다 학생들과 논의를 진행한 뒤 영화, 음악부터 신문기사나 소셜미디어 속 밈 또는 무작위 키워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작문을 진행했다. 수업은 수, 목 주 2회 진행되었으며, 목요일에 워크샵 주제를 정한 뒤 이를 바탕으로 글을 창작하고, 수요일 수업에서 자신의 글을 낭독한 뒤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문법적 오류로만 구성된 편지와 같은 가벼운 장난부터 자경단 활동의 적법성 여부와 같은 무거운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주어졌고, 학생들은 주제에서 어긋나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글을 써오기만 하면 됐다.
고전문학 수업에 비해 다양한 콘텐츠를 다룬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역시 학생들에게 어떠한 답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학생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하든 강사는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학생들의 의견과 동일하거나 반대되는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들이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필자 역시 강사와 학생들에게서 얻은 조언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사회 현안에 대한 필자만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으며, 이후의 학생기자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총평>
주제가 광범위하고 글쓰기에 대한 자유도가 높은 만큼 창조적 글쓰기 수업 자체에 대한 진입장벽은 높지 않은 편이다. 한편으로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거나 과제를 늦게 제출하지만 않는다면 A+ 학점을 받아들 수 있을 정도로 채점에 관대한 수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창조적 글쓰기 수업의 가장 큰 이점은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갖춘 학생들, 그리고 풍부한 문화적 식견으로 무장한 강사들과 다양한 주제를 두고 매주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은 많은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이들에게 있어 창조적 글쓰기 수업은 최고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