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문화축제의 음란함, 누구의 시선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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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월 인은 1960년대 뉴욕 안의 유일한 게이바였다. 뉴욕의 ‘유일한’ 게이바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그곳은 누추함이 역력한 술집이었다. 삼엄한 단속 때문에 불법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시설의 열악함은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바에서는 흐르는 물을 공급받을 수 없었고, 직원들은 손님이 사용한 잔을 물통에 대충 헹군 후 다시 술을 채워 다음 손님에게 건넸다는 일화에서 우리는 그 열악함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뉴 주에서는 공공시설에서 동성애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했었다. 따라서 바에 삼삼오오 모인 성 소수자들은 경찰의 단속에 감히 저항할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경찰이 들이닥치면 바에 모인 사람들은 춤과 스킨쉽을 멈추고 ‘무해한’ 이방인이 되어야 했다. 권력에 항변하지 못했던 나날들 가운데 1969년 6월 28일 새벽이 도래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경찰은 일부 크로스드레서들을 체포하기 시작했지만, 여느 때와는 다르게 매캐한 술집의 공기는 한 레즈비언의 외침에 저항 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역사적인 기념비로써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스톤월 항쟁 (Stonewall Riot)의 발단이었다.

프라이드 퍼레이드 (Pride Parade), 즉 성 소수자들이 매년 개최하는 퀴어문화축제는 스톤월 항쟁의 혁명적인 정신을 기념하고 고양한다. 퀴어문화축제에서 수행되는 신체의 노출은 그러한 정신을 코드화한 실천이지 음란 일변도의 광란 축제가 아니다. 노출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음란성’을 성립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퀴어문화축제의 ‘음란성’ 논란은 구체적인 배경과 사정을 적용해 판단해야 할 문제다. 실제로 공연음란 여부 판단에 대한 판례에 따르면, 신체의 노출 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일시와 장소, 노출 부위, 노출 방법과 정도, 노출 동기와 경위 등 구체적 사정에 비추어 음란죄를 적용한다. 따라서 법리적인 해석으로도 퀴어퍼레이드의 노출은, 그 행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비추어 봤을 때 ‘음란행위’로 해석할 수 없다. 오히려 ‘음란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퀴어문화축제에 투사하는 왜곡된 신념을 경계해야 한다.

물론, 법리적 해석을 역점에 두고 퀴어문화축제의 긍정론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성 소수자들이 혐오세력의 기대에 맞춰 정숙한 복장을 갖춰 입었다고 해보자. 그들은 과연 성 소수자가 ‘감히’ 이성애중심적인 질서를 전복하려는 시도에 꼬투리를 잡지 않을 것인가? 성 소수자가 몸과 복장을 규제당한 후에 규제대상으로서 남은 건 우리의 언행과 존재 그 자체일 것이다. 토플리스 (topless) 활동가가 가슴을 드러내는 행위엔 반기를 들고 비난하면서도, 여성 연예인의 가슴 노출에는 열광했던 그들 아닌가? ‘노출’ 그 자체가 ‘음란함’으로 귀결되지 않듯, 그들은 ‘노출’ 그 자체를 ‘혐오’와 연결 짓지 않는다. 하위문화에 속해 있어야 할 우리들이 감히 주체적이고 저항적인 태도를 유통하기에 혐오하는 것이다. 그들의 이성애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신념을 배반하기 때문에 혐오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뀌어야 할 것은 성 소수자의 태도가 아니라 그들의 왜곡된 프레임이고 시선이다.

퀴어문화축제는 성 소수자의 ‘몸’을 억압하고, ‘복장’을 검열했던 권력에 맞서 시작된 자긍심 행진이다. 일 년 중 한 번 개최되는 이 해방적 축제를 다시 ‘규범적인’ 몸과 ‘정상적인’ 복장으로 억압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불편한가? 그렇다면 당신이 퀴어문화축제에 투사하는 신념을 성찰해보길 바란다. 당신이 이것을 성찰할 만큼 성실하지 않다면, 일 년 중 그 하루만 시선을 돌리면 된다. 성소수자들은 매일 그들의 권리를 부정당하지만, 당신이 향유하는 특권적 위치는 그 정도의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불편함은 대체 누가 만들어냈는가? 우리의 몸과 복장을 음란함으로 해석하는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해당 질문에 답이 될만한 단초를 이 글이 제공했길 바란다.

 

진민균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