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간 한국 영화는 전례 없는 성과를 거두어 왔으며 이례적인 역사 또한 계속해서 쓰고 있다. 지난 2019년 5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72회 칸영화제에서의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이후 6월에 열린 66회 시드니 영화제에서 최고상, 10월에 열린 4회 슬레마니 국제 영화제에서 각본상, 12월에 열린 마카오 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 블록버스터 영화상, 독일 길드 필름프라이스에서 국제장편영화상 등을 비롯해 세계 각국 57개 영화제에서 19개의 상과 61개의 시상식에서 144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기생충”이 이뤄낸 쾌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20년도 1월에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시작으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그 다음 달에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끝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 영화상까지 4관왕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물론 한국 영화는 꽤 오래전부터 세계 영화계에서 숱한 인정을 받아왔으나 국제적인 상을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하여 “기생충”이 거머쥔 상들 앞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독 많이 붙는다. 작품상은 비영어 영화 최초의 작품상이었고 각본상은 아시아 영화 최초 각본상이었으며 감독상은 아시아계 영화 중 역대 두 번째 감독상이었다. 또한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영화는 세계 영화 역사를 통틀어 1955년 미국 영화 “마티” 이후 기생충이 두 번째가 된 셈이다. 봉준호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을 때 “사실 국가를 대표해서 (각본을) 쓰는 건 아닌데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 상입니다.”라는 수상소감을 전했다.
한국 영화의 질주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올해 4월, 배우 윤여정은 “미나리”라는 영화를 통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은 건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이며 아시아계 배우로는 역대 두 번째다. 다소 장난스럽지만 따뜻함을 갖춘, 그리고 그 누구보다 자식들과 손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현명한 할머니 순자 역을 연기하며 윤여정은 국내외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이름이 호명된 후 무대에 올라 수상소감을 발표한 윤여정은 긴장한 기색에도 불구하고 위트 있는 농담과 함께 유쾌함, 겸손함, 여유로움을 모두 보여주었다. 배우 윤여정이 아닌 인간 윤여정으로서도 존경하고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수상소감은 장안의 화제였다. 윤여정 배우는 “우리는 각자 다른 영화에서 다른 역할을 연기했기에 서로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그저 제가 운이 더 좋았을 뿐입니다”라는 수상소감을 전했다. 세계적인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를 엄격한 잣대가 기반인 한 평가제가 아닌, 그저 세계 다양한 영화들의 화합의 장으로 보는 그녀의 시선은 꽤나 인상 깊었다.
아카데미상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지난 5년간 많이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성장에 있어서 지난 2년간 한국 영화가 서양 영화제에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특히나 비영어 영화들을 “외국어 영화”로 구분 짓던 아카데미는 “OscarsSoWhite”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노력해왔고 백인과 남성 중심의 미국 로컬 영화제라는 오명을 벗어내고자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심판들이라 불리는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800여 명 회원들 중 80%가량은 아직도 미국 현지 영화 관계자들이 대부분이지만,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기생충”은 아카데미가 최후의 보루처럼 남겨놨던 언어적 장벽을 넘어, 미국 바깥 타인들의 이야기에 상을 줬다는 게 큰 의미”라고 얘기하며 아카데미는 점점 태생적으로 지녀온 장벽들을 하나하나 해체해가며 다양성을 갖춘 영화제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자 또한 향후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영화들의 작품성에 대한 평가가 서양의 잣대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 모두가 국가, 인종, 언어에 한정되지 않고 환대받기를 바란다. 세계 대중문화의 핵심은 다양성과 그에 대한 존중이다.